최근 총선을 앞둔 진보매체들의 편집방향을 보면 일정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구도에 의한 배제와 집중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쉽게 말해 될 사람이나 될 세력을 밀어주자는 심리가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세력을 배제하는 행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특정세력 배제와 집중은 진보나 보수를 떠나 일반적으로 편집을 통해 나타난다. 배제할 세력에 대해서는 아예 다루지 않거나 문제점을 집중 부각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반면 집중지원해야 할 세력에 대해서는 동정론과 개과천선론, 그리고 우호적인 집중 조명을 통해 나타난다. 물론 지금 나타나는 배제적 편집은 아예 해당 세력을 다루지 않는 것으로, 집중지원할 세력에 대해서는 변화에 초점을 맞춰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사례가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이같은 진보매체의 차별적 행태가 통합민주당과 창조한국당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알다시피 지난 대선 때 대부분의 진보매체들은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지리멸렬한 이미지의 정동영 후보보다 뉴패러다임으로 무장한 문국현 후보를 하나의 유력한 대안으로 여기고 있었음은 지면할애를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특히 인터넷매체들은 문국현을 일약 '2007년의 노무현'으로 끌어올릴 듯한 기세로 문국현을 집중조명했다.
그러나 그후 후보단일화 과정이 실패로 끝나고 기득권적 대세론으로 단일후보의 지위를 자임한 정동영후보에 비해 문국현 후보의 파괴력이 약화되자 진보매체들은 문국현과 창조한국당을 다시 평가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창조한국당은 문국현 이외에 복수의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1인 정당적 성격을 띠고 있었고, 이 때문에 당내 대선자금을 결산하는 과정에서 선거책임자들의 일부 문제까지도 '문국현 당'의 문제로 치환되어 지리멸렬을 면치 못하고 말았다. 즉 당내 여러 문제들이 모두 문국현 후보의 부덕의 소치로 되돌아 오는 구조적 취약성 때문에 선거패배에 대한 책임을 물을 대상 역시 문국현 후보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내홍으로 창조한국당과 문국현대표가 정치적 시련을 겪고 있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국현 후보의 창조한국당이 전통적인 의미의 보스정당, 혹은 전근대적인 1인 정당이라고 보기에는 여러가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무엇보다도 창조한국당은 문국현 후보가 중심이 되긴 했지만 '지역'이나 정치적 '연고'를 중심으로 모인 정당이 아니라 뉴 패러다임이란 강력한 정책노선을 중심으로 모인 정당이다. 그리고 이를 딋받침 하는 것이 3만5천여 명에 달하는 자발적인 진성당원의 존재다.
이런 정당을 3김 정당이나 군사정권이 만든 1인 정당이나 당원동원장당으로 비교하는 것은 우리가 경험한 역사적 경험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리 사려깊은 비교라 할 수는 없다. 현상으로 드러난 형태만으로 단순종양을 치명적인 암덩어리로 오진하는 돌파리 의사의 부주의와 사려깊지 못함을 우리라고 범하지 말란 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창조한국당을 전통적인 1인 지배정당으로 규정하는 것은 사실에 대한 면밀한 검토나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어떤 정략적 의도가 게재된 평가이거나 그런 의도에 휘말린 구도중심의 정치해석관이 빚어낸 오류일 가능성을 볼 필요가 있다.
정작 우려스러운 것은 진보매체들마저 면밀한 접근이 아니라 정치권의 구태의연한 구도정치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특히 이번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의한 다수 의석확보가 예견되는 절박한 상황이란 상황논리가 '솎아낼 세력'으로서 창조한국당을 겨냥한 것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최근 창조한국당과 관련한 진보매체들의 보도를 보면 당내홍 관련 보도를 집중 보도하면서 창조한국당을 '문국현 정당'(단순반복선전이 무서운 파괴력을 갖는다는 점을 진보매체들이 모를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라거나 '사실상의 와해'라는 방식의 표현을 동원한 것은 창조한국당에 대한 따끔한 충고의 수준을 넘어 이번 총선과 관련해 이미 어떤 결론을 내린 평가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반면 통합민주당에 대해서는 손학규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의 대쪽공천방침을 중심으로 보도하면서 어떤 회생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수 없다. 실제로 그같은 진보매체들의 보도덕분인지는 몰라도 최근 통합민주당에 대한 여론지지가 상승한 것은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통합민주당으로의 통합시너지요소말고도 진보매체들의 후한 보도태도로 인해 전통적인 지지세력이 결집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도 가능한 대목이다.
언론이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논조에 걸맞는 정치세력을 지원하고 비판하는 것은 언론의 속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이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전근대적인 정치구도를 가지고 정치패거리들과 같은 정치술수를 펴라는 말이 아니다.
정론에 따른 본래 의미의 정치질을 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정당에 대해 정책노선의 잣대를 엄히 들이대고 이를 중심으로 정당정치를 추동하는 의미에서 언론의 정치행위도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지 청산대상이 되어야할 구태정치행태, 즉 노선과 관계없이 형성된 붕당적 구도에 의한 배제와 집중의 방식으로 정치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언론의 정도를 벗어난 것이다.
워낙 정치현실이 다급하니 반한나라당 연합전선을 강조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렇더라도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한발 떨어져 있는 진보언론조차 현실 정치패거리들과 같은 행동양식을 갖는다면 그들이 평소 비난해왔던 '조,중,동,문'과 다를 바 무엇이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래도 언론이라면, 특히 진보언론이라면 자신들이 지향하는 논조에 부합하는 정치세력을 비판하되 육성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본다. 그 육성하는 자세도 직접적인 지지를 말함이 아니라 담론시장에서 국민다수의 복리를 지향하는 정책노선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충실한 소개와 논쟁을 유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현재 나타나고 있는 진보매체들의 행태를 보면 '창조한국당으로 안되니 통합민주당으로 가자'는 느낌을 은연중 주고 있다. 정치적 당사자도 아닌 진보매체가 스스로 정책담론시장을 내팽개치고 현실 정치구도와 관련한 정치보도를 한다면 이는 진보매체의 자멸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조선일보 등이 정권을 획득했는지는 몰라도 정론지로서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것과 같은 오류를 진보매체들이라고 해서 범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선거시기일수록 진보매체들의 담론생산공정은 역동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해서든 선거를 정책대결구도로 몰아가 유권자들이 자신의 이익과 가치를 중심으로 잘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언론의 영역이다. 그리고 그 중 진보언론은 진보적 가치, 즉 서민복지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가능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설파하는 노력을 함으로써, 그리고 그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지고 나온 정치세력을 집중조명해줌으로써 본연의 역할을 행한다고 본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 한국의 진보매체들이 바로 그와같은 새로운 시대의 담론형성과 확산에 기여하고 있는지, 아니면 현실정치라는 보다 좁은 정치구도에 매몰되어 보다 큰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자문해보았으면 한다. 여러가지로 아쉬운 대목이 많은 진보언론들의 시절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김석수님 글 제목을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