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경제평론가)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가더라도 결코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지금 걸어간 내 발자국은 뒤 따르는 이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今日我行蹟 遂作後人程).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서산대사의 말씀이다. 어떤 일도 가벼이 하지 말라는 뜻일 텐데, 특히 역사적인 결정은 따로 말해 무엇하랴.
지금 국회에서는 한미 FTA 비준동의안의 상정을 놓고 실갱이 중이다. 내 보기에 한미 FTA는 건국 이래 최대의 정책이다. 2년여 안간힘을 쓰던 반대의 목소리가 지치고 지쳐 잦아들 즈음에도 국민의 절반이 여전히 회의를 표했다.
우리뿐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운명까지 결정할 이 어마어마한 협상이 얼마나 졸속으로 시작되고 불공정한 결과를 낳았는지 반복할 필요는 없다. 당장 검색엔진으로 지난 2년 동안의 기사를 검색해 보라. 반대파의 우려는 불행히도 고스란히 현실이 됐고 정부의 호언장담은 거의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통상현안’일 뿐 ‘4대 선결요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변하다가 정부 문건이 TV에 공개되자 대통령은 마지못해 “그런 문구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한미 FTA 협상개시와 ‘아무 관계없이’ 30개월 미만의 뼈없는 미국 쇠고기 수입을 약속했던 정부는, 이제는 한미 FTA 비준동의와 ‘아무 관계없이’ 모든 쇠고기의 수입을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이 미국에 직접 전화를 건 것도 한미 FTA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단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이명박 정부는 마구잡이로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앞으로 경제자유구역이 더 지정되는 것은 물론 ‘전 국토의 준특구화’가 이뤄질 것이다. 그럴 듯 해 보이는 광역클러스터 정책도 실은 수도권 규제 완화를 노린 것이다. 이런 정책이 부동산 투기 등 온갖 부작용을 불러 일으키더라도 한미 FTA는 되돌아갈 길을 끊어 버린다. 경제자유구역은 ‘현재유보’에 포함돼 있어서 ‘역진불가능’ 조항이 적용되고 이 지역들에 미국 자본이 투자한다면 그때부터 투자자국가소송제가 적용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건강보험을 걱정하는 반대론자에게 ‘괴담을 유포시킨다’고 비난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민간보험 확대, 당연지정제 폐지는 마이클 무어의 영화 <시코(SiCKO)>가 곧 우리의 현실이 되리라는 것을 증명한다.
인수위가 만지작거리던 네트워크 산업 민영화도 조만간 실행될 조짐이다. 법인세 매년 1%p 인하 등 대기업에 집중적으로 이익이 되는 무분별한 감세정책으로 재정위기가 닥치면 정부에 떼돈을 안겨 주는 철도, 전기, 수도, 우편 등을 재벌에 팔려고 할 것이다. 공공요금은 들썩일 것이고 시골로 가는 공공서비스는 끊어질 것이다. 국민들이 아우성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호기롭게 민영화했던 영국의 철도가 일부 재국유화되고 미국 아틀란타시의 수도 민영화 장기 계약은 폐기되었다. 그러나 이들 공기업을 인수한 무슨 무슨 컨소시엄에 미국 투자가 들어간다면 우리는 이런 정책도 쓸 수 없다. 투자자국가소송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은 바야흐로 장기침체로 들어서고 있고 미국발 금융위기의 불똥은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미국의 부동산 버블이 꺼지는데 엉뚱하게도 프랑스의 투자은행, BNP 파리바가 관련 채권에 대한 환급정지를 선언했고 영국의 노던록 은행 앞에 예금을 인출하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한미 FTA는 우리 경제를 지킬 방화벽마저 무너뜨린다. 외환위기 때 비상대책을 동원했던 아르헨티나는 줄줄이 투자자 국가소송을 당하고 있다. 이미 패배한 한 건의 소송에서 아르헨티나가 물어야 하는 돈은 무려 1조원에 달한다. 세계적 금융 불안 속에서 규제를 강화해야 하는데 오히려 우리는 문제의 미국 금융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정부는 엉뚱하게도 우리가 먼저 비준을 해야 미국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이 수적 우위를 점하고 힐러리, 오바마 등 유력주자가 반대하는 한미 FTA를 미국 의회가 먼저 비준할 가능성은 0이다. 한미 FTA 비준을 미루는 연간 기회비용은 15조원이 아니라 당연히 0원이다. 멕시코가 미국에 앞서 나프타를 비준한 후 미국 의회는 설탕의 수입금지를 요구해서 관철시켰다. 먼저 비준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마지막 무기마저 내팽개치는 일이다.
우리 국회가 비준동의를 하는 순간 미국 의회는 미국 자동차의 한국 시장점유율을 보장하라고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할 것이다. 한미 FTA 자동차 분야에는 ‘비위반 제소’가 적용된다. 정부가 협정을 위반하지 않았더라도 결과가 미국의 합리적 기대에 못 미친다면 제소할 수 있다는 황당한 조항이다. 예컨대 미국 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이 10%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온갖 특혜를 부여해야 한다. 왜 이런 위험을 자초해야 하는 것일까?
유력한 차기 미국 대통령 후보 오바마는 미국이 맺은 FTA들이 서민의 삶을 개선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정곡을 찔렀다. 현재의 미국형 FTA는 두 나라 거대자본의 배만 불릴 뿐, 사회의 공공성을 여지없이 파괴하기 때문이다. 국익이라는 측면에서는 전체적으로 미국의 이익이지만 그 이익은 미국 대자본에게 집중되고 미국 국민들 역시 산업구조조정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해서 오바마는 미국의 FTA 정책을 근본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미국은 경기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더 노골적으로 시장개방을 요구할 것이다. 소수의 재벌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은 산업구조조정과 민영화의 폐해에 시달려야 한다. 한미 FTA를 폐기하지 않는 한 그 끝도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원들에게 묻는다. 정말로 한미 FTA가 일반 국민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하는가? 아니 협상문을 제대로 읽어보기라도 했는가? 나는 2년에 걸쳐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갔지만 국회의원들의 질문은 예나 지금이나 별 다름없이 초보 수준이다. KIEP 등 국책연구원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뻥튀기한 6% 경제성장률 증가를 정말로 믿는가? 한미 FTA로 직격탄을 맞을 지역의 농민, 노동자, 공기업 민영화, 규제완화로 닥쳐올 폐해를 상상이나 해봤는가? 장밋빛 청사진을 홍보하는 데 여념이 없는 정부에 대책이 있을 리 없다. 세계 11위 수준의 경제가 매년 10% 이상 성장한다는데 무슨 대책이 필요할까. 국민이 직접 뽑은 국회의원들은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서 정부에 요구했는가?
비준안에 서명하는 것은 역사의 눈밭에 발자국을 찍는 것이다. 총선이 문제가 아니다. 그리도 당당하다면 왜 무기명 비밀투표로 발자국을 지우려 하는가? 당신의 자랑스러운 결정을 역사에 생생하게 남겨서 후세의 귀감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서산대사의 명구를 되새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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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들판을 걸어가더라도 결코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지금 걸어간 내 발자국은 뒤 따르는 이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今日我行蹟 遂作後人程).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서산대사의 말씀이다. 어떤 일도 가벼이 하지 말라는 뜻일 텐데, 특히 역사적인 결정은 따로 말해 무엇하랴.
지금 국회에서는 한미 FTA 비준동의안의 상정을 놓고 실갱이 중이다. 내 보기에 한미 FTA는 건국 이래 최대의 정책이다. 2년여 안간힘을 쓰던 반대의 목소리가 지치고 지쳐 잦아들 즈음에도 국민의 절반이 여전히 회의를 표했다.
우리뿐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운명까지 결정할 이 어마어마한 협상이 얼마나 졸속으로 시작되고 불공정한 결과를 낳았는지 반복할 필요는 없다. 당장 검색엔진으로 지난 2년 동안의 기사를 검색해 보라. 반대파의 우려는 불행히도 고스란히 현실이 됐고 정부의 호언장담은 거의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통상현안’일 뿐 ‘4대 선결요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변하다가 정부 문건이 TV에 공개되자 대통령은 마지못해 “그런 문구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한미 FTA 협상개시와 ‘아무 관계없이’ 30개월 미만의 뼈없는 미국 쇠고기 수입을 약속했던 정부는, 이제는 한미 FTA 비준동의와 ‘아무 관계없이’ 모든 쇠고기의 수입을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이 미국에 직접 전화를 건 것도 한미 FTA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단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이명박 정부는 마구잡이로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앞으로 경제자유구역이 더 지정되는 것은 물론 ‘전 국토의 준특구화’가 이뤄질 것이다. 그럴 듯 해 보이는 광역클러스터 정책도 실은 수도권 규제 완화를 노린 것이다. 이런 정책이 부동산 투기 등 온갖 부작용을 불러 일으키더라도 한미 FTA는 되돌아갈 길을 끊어 버린다. 경제자유구역은 ‘현재유보’에 포함돼 있어서 ‘역진불가능’ 조항이 적용되고 이 지역들에 미국 자본이 투자한다면 그때부터 투자자국가소송제가 적용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건강보험을 걱정하는 반대론자에게 ‘괴담을 유포시킨다’고 비난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민간보험 확대, 당연지정제 폐지는 마이클 무어의 영화 <시코(SiCKO)>가 곧 우리의 현실이 되리라는 것을 증명한다.
인수위가 만지작거리던 네트워크 산업 민영화도 조만간 실행될 조짐이다. 법인세 매년 1%p 인하 등 대기업에 집중적으로 이익이 되는 무분별한 감세정책으로 재정위기가 닥치면 정부에 떼돈을 안겨 주는 철도, 전기, 수도, 우편 등을 재벌에 팔려고 할 것이다. 공공요금은 들썩일 것이고 시골로 가는 공공서비스는 끊어질 것이다. 국민들이 아우성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호기롭게 민영화했던 영국의 철도가 일부 재국유화되고 미국 아틀란타시의 수도 민영화 장기 계약은 폐기되었다. 그러나 이들 공기업을 인수한 무슨 무슨 컨소시엄에 미국 투자가 들어간다면 우리는 이런 정책도 쓸 수 없다. 투자자국가소송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은 바야흐로 장기침체로 들어서고 있고 미국발 금융위기의 불똥은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미국의 부동산 버블이 꺼지는데 엉뚱하게도 프랑스의 투자은행, BNP 파리바가 관련 채권에 대한 환급정지를 선언했고 영국의 노던록 은행 앞에 예금을 인출하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한미 FTA는 우리 경제를 지킬 방화벽마저 무너뜨린다. 외환위기 때 비상대책을 동원했던 아르헨티나는 줄줄이 투자자 국가소송을 당하고 있다. 이미 패배한 한 건의 소송에서 아르헨티나가 물어야 하는 돈은 무려 1조원에 달한다. 세계적 금융 불안 속에서 규제를 강화해야 하는데 오히려 우리는 문제의 미국 금융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정부는 엉뚱하게도 우리가 먼저 비준을 해야 미국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이 수적 우위를 점하고 힐러리, 오바마 등 유력주자가 반대하는 한미 FTA를 미국 의회가 먼저 비준할 가능성은 0이다. 한미 FTA 비준을 미루는 연간 기회비용은 15조원이 아니라 당연히 0원이다. 멕시코가 미국에 앞서 나프타를 비준한 후 미국 의회는 설탕의 수입금지를 요구해서 관철시켰다. 먼저 비준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마지막 무기마저 내팽개치는 일이다.
우리 국회가 비준동의를 하는 순간 미국 의회는 미국 자동차의 한국 시장점유율을 보장하라고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할 것이다. 한미 FTA 자동차 분야에는 ‘비위반 제소’가 적용된다. 정부가 협정을 위반하지 않았더라도 결과가 미국의 합리적 기대에 못 미친다면 제소할 수 있다는 황당한 조항이다. 예컨대 미국 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이 10%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온갖 특혜를 부여해야 한다. 왜 이런 위험을 자초해야 하는 것일까?
유력한 차기 미국 대통령 후보 오바마는 미국이 맺은 FTA들이 서민의 삶을 개선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정곡을 찔렀다. 현재의 미국형 FTA는 두 나라 거대자본의 배만 불릴 뿐, 사회의 공공성을 여지없이 파괴하기 때문이다. 국익이라는 측면에서는 전체적으로 미국의 이익이지만 그 이익은 미국 대자본에게 집중되고 미국 국민들 역시 산업구조조정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해서 오바마는 미국의 FTA 정책을 근본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미국은 경기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더 노골적으로 시장개방을 요구할 것이다. 소수의 재벌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은 산업구조조정과 민영화의 폐해에 시달려야 한다. 한미 FTA를 폐기하지 않는 한 그 끝도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원들에게 묻는다. 정말로 한미 FTA가 일반 국민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하는가? 아니 협상문을 제대로 읽어보기라도 했는가? 나는 2년에 걸쳐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갔지만 국회의원들의 질문은 예나 지금이나 별 다름없이 초보 수준이다. KIEP 등 국책연구원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뻥튀기한 6% 경제성장률 증가를 정말로 믿는가? 한미 FTA로 직격탄을 맞을 지역의 농민, 노동자, 공기업 민영화, 규제완화로 닥쳐올 폐해를 상상이나 해봤는가? 장밋빛 청사진을 홍보하는 데 여념이 없는 정부에 대책이 있을 리 없다. 세계 11위 수준의 경제가 매년 10% 이상 성장한다는데 무슨 대책이 필요할까. 국민이 직접 뽑은 국회의원들은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서 정부에 요구했는가?
비준안에 서명하는 것은 역사의 눈밭에 발자국을 찍는 것이다. 총선이 문제가 아니다. 그리도 당당하다면 왜 무기명 비밀투표로 발자국을 지우려 하는가? 당신의 자랑스러운 결정을 역사에 생생하게 남겨서 후세의 귀감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서산대사의 명구를 되새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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