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존뉴스>는 지난 5년간 좌익정권 종식의 승부처로 작용했던 주요 사건들을 재조명하는 시리즈 기사를 기획했습니다. 열한번째 순서는 2007년 8월 한나라당 경선 직후부터 좌파 진영이 집요하게 시도한 ‘문국현 띄우기’에도 불구하고 문국현 후보가 지지층 확산에 실패한 사건입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적극 지원했던 오마이뉴스 등 좌파 언론이 전력을 기울였던 ‘문국현 띄우기’가 실패하면서 좌파 진영은 단일화 이벤트를 통한 막판 역전 기회를 상실했습니다. <편집자 주>



좌파의 ‘문국현 띄우기’ 실패

2007년 상반기. 범여권의 영입 대상이었던 고건 전 국무총리와 정운찬 전 서울대학교 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범여권의 대선 전략에는 차질이 생겼다. 여기에 범여권의 기대와 달리 한나라당이 8월 경선을 무사히 마치고 이명박 후보를 선출하면서 범여권의 역전 가능성은 소멸하는 듯 했다.

치열한 경선에서 승리하고 후보가 된 이명박 후보는 범여권 단일후보와의 가상 대결 여론조사에서 70%에 육박하는 지지도를 기록, 대세론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반면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에 참여한 손학규-정동영-이해찬-유시민-한명숙 후보들 중에서는 단 한명도 지지율 10%를 넘지 못해 범여권 지지자들의 위기의식은 깊어지기만 했다. ‘문국현 대안론’을 위한 충분한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이에 범여권 및 좌파 진영에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고, 이들이 꺼낸 카드는 바로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이었다. 오래 전부터 범여권 대선주자로 거론되어 온 그는 2006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여당의 영입 제안을 수차례 받았다.

그는 8월 23일 출마선언을 통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영혼이 부패한 개발독재 시대의 기업인”이라고 평가하고 “이번 대선은 ‘재벌·건설 중심의 가짜 경제’와 ‘사람·중소기업 중심의 진짜 경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국민적 축제가 돼야 한다”고 규정, ‘반 한나라당’ 대선주자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했다.

최열-임종인 등 문 후보 주변에 몰려드는 인사들의 면면도 그가 이견 없는 ‘범여권 대선주자’임을 분명히 했다. 문 후보의 대선출마 선언에 참여한 환경재단 최열 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반미 촛불시위 등을 주도한 바 있고, 임종인 의원은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철수, 연방제 통일 등을 주장해 온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간부 출신이었다.

좌파 진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문국현 띄우기’에 돌입했다. 오마이뉴스는 오연호 대표와 문국현 후보와의 마라톤 인터뷰를 소개하며 바람몰이에 나섰고,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 당시 인터넷 상에서 댓글 도배 등 여론몰이로 재미를 본 친노성향 네티즌들도 이에 합세했다.


각종 포털사이트 댓글란 및 게시판은 문국현 후보를 극찬하는 ‘문빠’ 네티즌들의 글로 도배됐다. 오마이뉴스가 시작한 ‘문국현 띄우기’에는 KBS-MBC 등 공영방송도 가세했다.

그러나 좌파 진영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7년 9월 1일 한겨레신문-리서치플러스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의 지지도는 1.9%에 불과했다. 2002년 대선과 달리 온라인 여론몰이가 국민 여론에 미치는 폭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9월 하순, 추석 연휴가 지난 후에도 문국현 후보의 지지도는 여전히 4~5%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문 후보는 공식 석상에서 자신의 지지도를 부풀려서 홍보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지지도가 조만간 15%를 넘을 것이라는 호언장담으로 일관하기도 했다.

대선 출마 선언과 범좌파 진영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정체하고 있는 지지도에 초조해진 것일까. 문국현 후보는 ‘여론조사 뻥튀기’까지도 서슴치 않으며 구설수에 올랐다. 2007년 10월 8일 오전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정책간담회를 가진 문 후보는 “그동안은 자꾸 자기네 쪽(여당)으로 단일화하자는 사람들이 이상했는데, 이제 국민은 선택한 것 같다”며 “저 중심으로 이미 단일화됐다고 본다. 제 호감도가 78%나 되는데 왜 호감도가 20%도 안되는 분들과 비교하나”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자신의 호감도가 범여권 주자들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주장한 것이다.

문 후보는 9월 27일~29일 실시된 중앙일보-SBS-한국리서치 여론조사를 인용한 듯 했다. 그러나 이 여론조사 결과 문 후보의 호감도는 78%가 아닌 37.8%였다. (전국 5천명의 유권자들을 상대로 전화면접 조사. 오차한계는 95% 신뢰수준에서 ±1.4%p) 무려 40%를 부풀려서 말한 것이다.

여기에 문 후보가 10월 발기인대회를 가진 창조한국당에 좌파성향 인사들이 대거 포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외연 확대를 가로막았다. ‘정치색이 없는 개혁적 인사들과 문화예술인들을 전면에 배치했다’는 문국현 캠프 및 일부 언론의 주장과는 달리 국보법 폐지, 한총련 두둔 등의 경력을 보유한 이념지향적 인사들이 대거 포진한 것으로 알려진 것.

문 후보의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도 모습을 드러낸 최열 환경재단 대표를 필두로 장유식, 김용택, 도중환, 황대권, 곽노현 등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들의 이름이 발기인 명단에서 확인되면서 문 후보와 창조한국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좁아졌다. 또 문 후보 본인도 노무현 좌파정권 출범 직후인 2003년 초에 환경부장관에 거론되고 2004년에는 대통령 자문 ‘사람입국 신경쟁력특위’ 위원장을 지내 더욱 중도세력을 겨냥해 외연을 확장하기 힘들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문 후보는 좀처럼 오르지 않는 자신의 지지율을 ‘언론 탓’으로 돌리며 빈축을 샀다. 그는 10월 19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나를 철저히 소외시키기 위해서 TV나 신문이 그동안 일절 나에 대한 인터뷰를 안 실었는데 이런 철저한 무시작전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이렇게 나온 것은 기적”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한겨레 21’이 지난 10월 보도한 바에 따르면, 문 후보의 대선 출마 소식을 다루기 시작한 8월22일부터 10월19일 오후까지 문화방송과 한국방송, SBS 등 방송 3사를 포함한 TV 뉴스는 문 후보 소식을 117차례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문 후보 이름이 한 번이라도 거론된 뉴스로 범위를 넓히면 315건으로 늘어났다. 이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와 민주당 이인제 후보 등 문 후보와 유사한 지지도를 기록 중이던 군소후보들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였다. 결국 문 후보는 자신이 ‘문국현 띄우기’에 올인하고 있는 좌파 언론으로부터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 채 언론을 비난하는 자충수를 둔 것이다.

11월 들어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문국현 후보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문 후보의 한 자릿수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그를 이명박-정동영 후보와 비슷한 비중으로 보도하던 공영방송이었지만 이회창 후보 출마 이후에는 이명박-정동영-이회창을 ‘BIG 3’로 취급했다.

11월 26일 대선후보 등록 마감일을 앞두고 ‘11월말까지 20% 지지율을 달성할 것’이라던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의 약속은 사실상 폐기됐다. 한국지방신문협회-리서치앤리서치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의 지지도는 6.4%에 그쳤고,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도 그는 6.9%를 기록했다.

‘11월초부터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저의 1,2위 대결구도가 펼쳐질 것’(10월 6일, 창조한국당 제주지부 출범행사), ‘11월초까지는 지지율도 15~20%까지 자력으로 올리겠다’(10월 11일, 기자간담회), ‘11월 중순까지 15% 가는 게 목표다. 11월 말 등록 이전에는 20%에서 그 이상까지 가지 않겠는가’ (10월 26일, 경향신문 인터뷰) 등의 발언이 모두 공염불로 끝난 것이다. 그러나 일부 문국현 지지자들은 ‘여론조사는 응답률이 낮아서 신뢰할 수 없다’는 등 해괴한 논리로 현실을 부정하기에 급급했다.

12월 들어 검찰이 이명박 후보의 BBK 관련 의혹에 대해 무혐의 판정을 내리면서 문 후보는 더욱 초조해진 듯 했다. 문 후보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제외한 대선 후보들이 5자회동을 열어 이명박 후보를 사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 결과도 무시한 채 이명박 후보를 ‘유죄’라고 임의로 규정한 것이다. 이는 무죄추정 원칙을 무시한 허위사실 유포로, 만의 하나 문 후보가 당선됐을 경우 당선취소 사유가 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발언이었다.


  
 
▲대선을 며칠 앞두고 블로그-카페 등을 이용한 허위사실 유포에 나선 문국현 지지자들. 중앙선관위는 이들의 행위를 '선거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해당 게시물들의 삭제를 포털사이트에 요청했다.ⓒ 네이버 캡쳐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일부 문국현 후보 지지자들은 개인 블로그를 이용한 불법 선거운동에 나섰다. 문 후보 지지자들은 ‘J신문이 12월 13일과 14일 양일간 실시된 부재자투표의 ‘출구조사’를 한 결과 문국현 후보가 1위였다‘는 글을 포털사이트 블로그와 카페 등에 대거 유포했다.

그러나 <프리존뉴스> 취재 결과 부재자투표에 대한 출구조사는 실시된 적이 없었던 것으로 판명됐다. 부재자투표의 대다수는 군부대에서 행해지는데, 언론이나 캠프 관계자들이 부대에 난입해서 장병들을 상대로 출구조사를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허무맹랑한 주장이었다. 중앙선관위 사이버단속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일부 네티즌들의 허위사실 유포 등 불법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선거가 끝난 후에도 법적조치를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해당 게시물들의 삭제를 포털 측에 요청했다.

SBS 선거방송팀 현경보 차장도 “(통상적으로)부재자 투표에 대해서는 별도로 출구조사를 하지 않으며, 부재자들의 투표 성향을 파악해서 출구조사 발표 시 보정조치를 할 뿐”이라고 언급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부풀려서 말하며 ‘언론 탓’을 하던 문국현 후보.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 기간을 틈타 ‘부재자투표 출구조사’라는 허위사실을 거침없이 유포하던 문국현 지지자들. ‘진보-개혁’을 참칭한 세력이라고는 보기 힘든 전형적인 구태 정치의 모습이었다.

‘노무현 학습효과’로 단련된 유권자들은 ‘AGAIN 2002’를 원하지 않았다. 12월 19일 저녁 개표 결과 국민들이 이들에게 준 성적표는 5.8%였다. 결국 문국현 후보는 대선을 위해 지출한 수십억원의 선거비용을 단 한푼도 환급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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