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종교, 철학, 이데올로기 등이 사랑을 설파한다. 소설, 시, 음악, 미술 등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은 가장 중요한 테마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는데, 특히 대중가요의 경우 사랑이 빠지게 되면 작사가들은 밥을 굶게 된다. 연속극, 영화, 연극, 만화도 다 이러한 범주에 포함된다. 우리들은 가히 사랑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랑이란 명제는 형체와 실재가 불분명한 관념어지만, 그 단어가 동사로 사용될 때에는 목적어가 당연히 필요하다. 그 대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국가, 민족, 사회, 이웃, 가족, 친구, 연인, 부인, 자식 등 그 외 나 자신, 자연, 우주, 인격신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의 대상이 이렇게 다양하다보니 이 단어를 기본 이데올로기로 하는 집단도 당연히 발생하게 마련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기독교를 들 수 있는데, 요즘은 교회의 간판을 아예 사랑으로 정한 곳도 흔하게 눈에 띈다. 서초동에 있는 ‘사랑의 교회’가 대표적인 예다. 알다시피 기독교의 신약은 그리스어로 기록된 경전이다. 사랑이란 단어는 그리스어로는 4가지 정도로 구분되고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 ‘에로스’라는 말은 주로 이성간의 사랑을 의미하며, ‘스트로게’라는 말은 가족 간의 애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친구나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 사회적 공감이나 교감을 이를 때는 ‘필리아’란 용어로 구분한다. 마지막으로 무조건·일방적인 절대적인 사랑 혹은 대상 그 자체를 사랑하는 타인 본위의 사랑은 ‘아가페’란 단어가 쓰인다. 물론 기독인은 그들의 사랑을 ‘아가페’ 사랑이라고 강변한다. 과연 그러한가? 혹시 기독교가 주장하는 그 사랑은 조건부 사랑은 아닐까? 기독교의 교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한다는 성탄절 무렵, ‘사랑의 교회’ 정문을 쳐다보면, 기독교 혹은 사랑의 교회가 내세우는 사랑이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기독교의 사랑(아가페)과는 별개의 사랑이었음을 알게 하기에 충분한 듯싶다. 이랜드 그룹이 노조간부 33명에 대한 무더기 해고를 단행한 가운데 노조 측은 21일 오후 이랜드 박성수 회장이 장로로 있는 사랑의 교회에 사태 해결을 위한 중재를 요청했다. 노조 측은 사랑의 교회에 ▲박성수 회장과 노조 대표와의 만남 주선 ▲박 회장이 기독교를 돈벌이에 이용치 못하도록 권고 ▲박 회장이 사태 해결에 나서지 않을 경우 장로직 박탈 등을 단행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랜드 노조 측의 절박한 상황을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와 오정현 목사도 모르지는 않을 터이다. 그러나 오 목사는 "교회는 정치적 장소가 아니"라고 말하고 "(이 문제에 대해)정치적으로 불간섭과 무대응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랜드 비정규 문제점을 정치적 문제로 단정하는 오 목사의 편견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랜드노조의 요구에 대해 “사랑으로 위로는 할 수 있겠지만, 교회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개입할 수도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오정현 목사의 단호함과 그 자신감은 무엇에 근거를 두고 있을까? 노조와의 교섭 자체를 거부하는 박성수 장로에게 만남을 주선하는 일이 과연 정치적인 행위일까? 이랜드라는 기업을 통해, 기독교기업의 구현을 내세우면서도 비정규직이란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박 장로의 행위에 대해 오 목사는 견해를 표현할 수 없는 위치일까? 아무래도 오정현 목사가 사랑하는 대상은 사회적 약자임이 분명한 이랜드 비정규직원이나 노조원 등은 아닌 듯싶다. 그가 사랑하는 대상은 박성수 장로같이 돈 많고 교회에 충성하길 즐겨하는 사람만이 사랑의 대상인 듯싶다.
굳게 닫혀진 교회의 문 앞에서 추위에 떨며, 180여일 째 거리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이랜드 비정규직과 노조원들의 고통이 비수가 되고 있는 세모 무렵, 한기총 회장의 성탄절 메시지가 가증스럽게만 느껴진다. 대표회장 이용규 목사는 “그늘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세상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사랑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라고 밝혔다. 또 이 목사는 “교회가 이처럼 생명과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나눔과 섬김을 실천한다면 사람들은 성탄절의 의미를 생각하며 모든 절망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기쁨과 감사를 통해 세상에 편만한 어두운 그늘이 걷히고 소외되었던 이웃과 함께 형제의 우애를 나누는 성탄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교회가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하며, 소외된 이웃과 함께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나눔과 섬김을 실천해야한다는 주장이다. 한국 개신교 최대의 단체이며 대표성도 함께 가진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회장의 성탄절 메시지가 단지 구호용이 아니라 실천하는 명제라면,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임이 옳다. 기독교는 언제나 사랑과 평화를 내세운다. 문제는 그 사랑과 평화가 행동과는 별개로 단지 구호로 그치고 만다는 의문과 함께, 기독인이 주장하는 사랑과 평화는 혹 조건부 사랑과 평화가 아닌가하는 의심이다. 한기총이든 사랑의 교회이든 이랜드이든 말로만 사랑을 내세우지 말고, 기독교 혹은 교회라는 범주내의 조건부 사랑에서 벗어나, 기독교식 표현대로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정말 보고 싶다. 사랑의 교회가 이랜드 비정규직의 하소연을 끝까지 외면할 방침이라면, 교회 명칭을 ‘조건부 사랑의 교회’라고 바꿀 것을 권유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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