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김영춘의원이 생각의 나무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비평"의 2007년 가을호 제16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번 대선은 한국발전모델의 선택 경쟁이어야
-유한식 자본주의와 월마트식 자본주의

1. ‘97년체제’ 10년의 발전적 극복을 위하여 (금번 대선의 의미와 시대정신)

노무현 정부 이후 새로운 5년을 책임질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다가올 5년을 이끌어갈 새로운 지도자는 노무현대통령 5년으로부터 무엇을 극복하고 어떤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인가?

노무현대통령의 가장 본질적 문제는 사실 언어가 아니라 그의 국정운영 철학의 혼돈이다. 노무현정부는 김대중정부 시절 외환위기 체제 속에서 외부로부터 강요받았고 우리 사회 지식인, 관료집단 거개가 지적(知的) 투항을 해버림으로써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되어버린 시장지상주의의 횡행을 일정 정도 제어해야 할 시대적 임무를 띠고 출발하였다.

하지만 노무현정부는 적어도 경제 부문에서는 현실의 지배적 조류에 순치되고 적응해버렸다. 도전은 수사적 언어에 그쳤고 그의 진의가 어디에 있었든 시장지상주의는 지난 4년여 내내 참여정부의 지배적 패러다임이었다. 그럼으로써 노무현정부는 한국적 발전모델의 실천적 확립과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축소 노력을 사실상 방기해 버렸다.

그 결과 노무현정부 4년은 거꾸로 양극화가 확대 일로를 걸은 기간이 되어버렸다. 소득계층간 상하 격차도 확대되었고 빈곤계층의 실질근로소득은 감소하였다. 일자리의 질은 점점 더 나빠져 비정규직이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미국을 능가하는 시장 전능의 사회가 되어버렸다. 양극화는 소득만이 아니라 당연히 자산의 격차도 확대시켰다. 평생 직장은 사라지고 한번 직장에서 밀려난 근로자들은 대부분 열악한 상황으로 추락하는 반면, 자산가들은 대부분의 경우 경기와 상관없이 재산을 늘려나간다.

필자는 노무현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낮은 지지율이-다른 요인들도 작용했지만- 우선 이러한 사회경제적 지표로부터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정부는 문제의 해법을 엉뚱하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확대에서 찾았다. 결국 무한경쟁논리와 성장지상주의의 우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이다. 지난 10년간 우리 경제의 지배적 원리로 작동해온 신자유주의적 관점을 수정 보완하지는 못할망정 더 가속화시키는 선택을 한 것이다. 한미FTA의 선택이 바로 그것이다. 필자는 그것을 투기적 전략이라고 일컫고 싶다.

모든 개방은 다 선(善)인가? 개방하지 않은 나라 중에 잘 된 나라 없다는 대통령의 말씀은 맞다. 하지만 지나친 단순화는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을 지닌다. 급격한 개방확대는 준비된 내부 체제와 사회적으로 합의된 국가전략이 있는 나라라면 분명히 기회의 요인이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허술한 대응체제로서는 재앙일 수 있는 것이다. 일례로 97년 환란 당시 너무 쉽게 생각하고 실시한 단기자본시장의 개방으로 인해 우리 경제는 약간의 내외부적 충격에도 직격탄을 맞았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남아 국가들의 일반적 경향이었다.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이에게 어른들과 100m 달리기 경주를 시킨 형국이었다.

한미FTA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국가라면 미국과의 자유무역이 우리에게 어떤 실익과 손해를 가져다 주는 지, 그 손해는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인지, 그 손해를 능가하는 이익의 실현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등을 면밀히 검토한 연후라야 비로소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추진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어떤 보고서를 읽어봐도 나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이익추계는 과장되어 있으며 손해는 최소한으로 축소되어 있다.

이 문제가 특히 예민한 것은 협정의 상대국가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므로 먼저 선점해야 한다는 논리가 갖는 설득력보다 세계의 패권국가인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리가 더 많은 이익, 혹은 최소한 호혜 평등한 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는 기대 자체가 현실성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가 애초에 장담했던 것과는 달리 최종 타결된 협상 결과가 입증한다. 특히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우리 경제모델의 미국화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식 표준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며 확장일로에 있지만 그 자체가 모든 나라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지고지선의 모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식이 힘을 갖는 것은 미국의 패권적 힘이 세계경제체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강제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먼저 나서서 발가벗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과잉의 선택이다. 흔히 아일랜드의 선진화를 가져온 개방전략을 많이 거론하지만 아일랜드는 그 출발선에서 노-사-정-농 간의 사회적 합의와 유럽식 복지체제의 구축을 동반했다. 요컨대 그 나라는 영미식의 개방적 시장주의와 대륙식의 복지모델을 조화한 것이다. 그러기에 지속가능한 성장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일본, 유럽 등 다른 선진국이나 비중있는 중위권 국가들 중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선뜻 나서는 나라가 없는 이유는 그들이 소심하기 때문이 아니다(해외 수출의 80~90%를 미국에 의존하고 멕시코, 캐나다는 예외이다). 그들 나름대로 세계화의 대세를 수용하면서도 다른 한편 사회적 통합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고유의 발전전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우리가 한미FTA를 추진하기 전에 우리의 국가발전전략과 모델 설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먼저 추진하고 개방화, 세계화 전략도 사려깊은 전략적 선택과 수순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관점에 따르면 미국보다는 EU와의 FTA를 먼저 협상하는 것이 훨씬 실익이 컸을 것이고 충격과 손실도 최소화시킴으로써 개방의 내성을 키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이번 대선이 뒤늦게나마 한국적 발전모델의 선택을 둘러싼 대논쟁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세계화, 정보화, 자동화의 파장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는 가운데 비주체적으로 그 물결에 휩쓸려 가고 있다. 우리 사회의 지성인들도 그 대세를 적극 주장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그것이 초래하는 충격에 대한 지적 통찰은 게을리하거나 발언을 삼가하고 있다. 그 결과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우리 사회의 지속적 발전 가능성을 결정적으로 저해하고 있는 국면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마당에 금번 대선마저 개인의 인기투표 식으로 전락해버려서는 향후 참으로 곤란한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2. 차기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토마스 프리드먼이 말하는 세계화의 축복은 후진국에는 해당되지 않을지 몰라도 대한민국으로서는 충분히 선진국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회는 제대로 된 국가발전전략이 세워져 있고 이를 관철시킬 사회적 합의가 있을 때 실현 가능할 것이다. 필자는 세계화와 기술정보혁명의 물결을 잘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발전과 사회적 통합을 동시에 수행하는 국가발전전략의 지휘자가 차기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적어도 건설토목 전문가나 박정희식 개발독재의 향수에 사로잡힌 전시대의 사람들이 이러한 임무의 적임자일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차기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과 통일시대의 도래를 준비하는 비전을 가진 사람이어야만 한다. 한반도 정세가 일반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급진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1~2년 사이에 북-미 수교가 이루어지고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최선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남북관계의 비약적 전환 국면이 도래할 때 우리 사회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차기 대통령에게는 분단 남한의 경영이 아니라 대륙국가 한반도 경영의 시야와 철학이 중요한 덕목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본격적인 사회간접자본 투자, 기업 투자를 준비하는 치밀한 노력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재원을 만들어내기 위한 나름의 준비와 사회적 합의, 국제적 협력 기반 구축 역시 미리 도모되어야 한다. 냉전시대의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이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차기 대통령은 세계화와 사회경제적 양극화, 그리고 한반도 정세의 급진전이라는 크나큰 도전을 능동적으로 극복함으로써 나라를 발전시키고 국민들을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이 모든 도전들에 제대로 응답할 수 있는 국가발전전략을 사회적으로 공유시키고, 공동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사회적 대타협을 성사시켜낼 수 있는 설득력과 포용력, 그리고 지도력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3. 한국적 발전모델

필자는 우리나라가 미국식의 월마트 자본주의로 가는 것을 반대한다. 가장 싼 물건을 팔지만 그 상품의 대부분은 외국 수입품들이고(국내 고용은 감소한다), 비정규직인 월마트의 노동자들 대부분은 한계 생활에 허덕인다. 그 노동자들의 복지 지원을 위해 다시 소비자들은(월마트가 아니다) 세금을 더 지출해야 한다. 빈곤선 이하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불법 이민들이거나 교육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하층 계층들이다. 미국이기에 가능한 모델이지 우리나라같으면 불가능한 구조이다. 이런 자본주의가 결코 우리의 모델일 수는 없는데도 우리는 그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 고용을 축소하고 정규직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전락시키면서 말이다.

반면 필자는 유한킴벌리식 경영에서 세계화시대 우리 사회의 희망과 좌표를 본다. 유한양행과 킴벌리클라크의 합작회사인데 지분은 외국회사가 많지만 경영은 한국인이 책임지고 있다. 이 회사에는 정규직으로만 1680명의 노동자들이 있다. 작년에 8,300억원의 매출에 90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이 회사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 중시 경영이고 종신고용원칙이다. 4일 일하고 4일 쉬는 4조 2교대제를 도입함으로써 보통의 근무형태보다 약 30%의 고용을 더 창출하였다.

종업원들은 단순 노무자가 아닌 지식노동자를 추구하는 평생 학습 시스템에 참여하고 많은 여가시간을 가족과 함께 하며 재충전을 한다.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상회하는 노동생산성의 증가가 이루어 졌고 이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은 시장에서 대부분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의 외국계 회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 후의 결과이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셈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중소기업 수준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고 폄하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유한킴벌리의 성과에 고무된 킴벌리 클라크는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의 경영까지 이 회사의 사장에게 위탁했고, 그 결과 역시 성공적이다. 유한식 모델의 위력이 입증된 셈이다.

유한식 경영은 사실 중소기업 수준에 국한될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며, 아주 새로운 것도 아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기업이 된 일본의 도요타자동차 역시 비슷한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 그리고 닛산과 비교했을 때 도요타의 우월한 경쟁력은 어디서 나올까? 역시 인간 중시 경영이다. 1990년대 일본이 어려운 경제 상황에 처했을 때 도요타의 최고경영자는 미국식 경영 방식 도입을 압박하는 세론에 대해 종업원들을 해고시키느니 차라리 할복하겠다며 종래의 경영 방침을 고수했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종업원들을 전혀 감원하지 않고 함께 위기를 극복한 유한과 본질 상통인 것이다.

필자는 우리의 자본주의가 유한식, 도요타식 자본주의가 되었으면 좋겠다. 크고 작은 모든 기업들이 스스로 이런 경영을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므로 정부와 사회가 나서야 한다. 우선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대한 환상과 그것에 입각한 발전모델의 통념을 깨뜨려야 한다. 특히 정부는 세제 혜택과 금융지원 등의 방법으로 유한식 경영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신뢰의 인프라가 박약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토대위에서만 사회적 대타협도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노동자와 기업과 국가가 공히 이익을 누리는 경제모델이 가장 최상의 선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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