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상하수도 서비스 민영화 이후 13년 동안 시설 투자 못 받고 살인적인 요금 인상에 시달려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66억 인류의 약 30%가 물 부족 국가에 살고 있다.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깨끗한 물’에 굶주려 있다. ‘석유전쟁’ 다음은 ‘물전쟁’이란 말이 허튼 소리는 아닌 게다. 유엔이 산하 24개 국제기구와 공동으로 지난 2006년 3월 펴낸 <제2차 세계 물개발보고서>에서 “안전한 물 공급을 통해 질병을 줄이고, 수명을 연장하고, 마실 물 확보를 위해 쏟아붓는 시간을 다른 경제활동에 활용하게 된다면 지구촌 차원에서 연간 3천억~4천억달러의 경제유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물은 인권이다. 물은 삶이다.’ 지난 2005년 12월 홍콩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에 앞서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섣부른 물 사유화가 가져올 폐해를 경고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REUTERS/ PAUL YEUNG) |
세계은행이 부과한 구조개혁의 일환
말은 쉬운데 현실은 어렵다. 문제는 역시 ‘돈’이다. 물 부족 국가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가난한 나라는 상하수도 시설 신설·보수에 투자할 재원이 없다. 유일한 대안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등 국제금융기구의 지원뿐이다. 다만 이들의 자금 지원엔 ‘조건’이 따라붙는다. 1997년 외환위기와 구제금융을 경험한 우리에게도 낯익은 ‘구조조정’이란 이름의 ‘사유화’가 그것이다.
국제금융기구가 다국적 자본과 합작해 ‘물 사유화’를 일궈낸 대표적 사례는 아르헨티나에서 찾을 수 있다. 경제위기에 몰려 구제금융을 지원받고, 위기 돌파를 위해 상하수도를 포함한 공공부문 민영화에 적극 나섰던 아르헨티나의 경험은 섣부른 물 사유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1980년까지만 해도 아르헨티나의 광역 상하수도망은 국영기업인 ‘오브라스 사니타리아스 데 라 나시온’(OSN)이 운영했다. 그 해 호르헤 라파일 비델라 군사정권은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권역을 제외한 아르헨티나 전역의 광역 상하수도망 관리·운영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했다. 중앙정부의 예산 부족을 메우기 위한 조처였다.
오랜 군사독재와 만연한 부패, 피폐한 경제 상황과 한때 5천%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속에 1989년 7월 카를로스 메넴 정부가 들어섰다. 메넴 대통령은 IMF와 위기 탈출을 위해 세계은행의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취임한 지 한 달여 만인 그해 8월 메넴 정부는 이른바 ‘국가개혁 법안’을 통과시키고,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한 민영화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국영통신업체와 철강업체가 잇따라 민영화됐고, 이어 상하수도 부문이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OSN이 맡고 있던 부에노스아이레스 권역의 상하수도 체제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매설 수도관이 노후한 탓에 누수율은 50%에 육박했고, 물 수요가 많은 여름철이면 단수가 밥 먹듯 이어졌다. 하수시설은 턱없이 부족했고, 오염처리 능력도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 무렵 OSN은 세계은행이 부과한 ‘구조개혁’ 과정에서 예산 삭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991년 OSN 대표가 “상하수도 시설 개선·확충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없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OSN은 애초 300만 인구에 상하수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곳곳에 슬럼이 형성돼, 부에노스아이레스 권역 주민의 약 30%가 적절한 상하수도 시설 없이 살아가게 됐다.
‘민영화’가 유일한 대안으로 떠올랐고, 동시에 상하수도 요금이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1991년 한 해에만 상하수도 요금 ‘두 자릿수 인상’이 꼬리를 물었고, 관련 세금까지 신설되면서 삽시간에 60~70%까지 요금이 치솟았다.
‘시장’에 나온 부에노스아이레스 권역 상하수도 운영권을 거머쥔 것은 프랑스계 거대기업 수에즈와 비벤디가 주도한 다국적 컨소시엄 ‘아구아스 아르헨티나스’(이하 아구아스)였다. 이 업체는 상하수도 요금 26.9% 인하와 대규모 시설투자 등을 내걸고 1993년 3월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인근 14개 지역 930만여 명의 주민들에게 상하수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30년짜리 계약을 따냈다. 사상 최대 규모의 ‘물 사유화’가 성사된 게다.
가정용 상수도 요금 88.2% 치솟아
아구아스 쪽은 운영권 확보 직후 ‘약속’대로 요금 인하를 단행했다. 하지만 민영화 전 이미 요금이 치솟은 탓에 이는 눈먼 생색에 불과했다. 아울러 OSN 노동자 7200명이 삽시간에 일자리를 잃었다. “마지막 피 한 방울을 쏟을 때까지 민영화에 맞서 싸울 것”이라던 노조 지도부가 아구아스 쪽의 ‘지분 보장’ 약속에 맥없이 무너져내린 뒤였다. 하지만 이는 다가올 ‘재난’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애초 아르헨티나 정부는 민영화 이후 첫 5년간 상하수도 요금을 동결하고, 이후 매 5년마다 물가 인상에 연동해 요금 인상을 논의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아구아스 쪽은 민영화 이후 불과 8개월여 만에 요금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계약 내용과 별개로 빈민촌 등지에 대한 서비스 확충을 위해 2300만달러를 추가로 투자했다는 게 이유였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논란 끝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에 무작위로 들어선 판자촌에 대한 우선 시설투자를 전제로 13.5% 요금 인상안을 승인했다.
아구아스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만성적인 요금 체납 문제를 뿌리 뽑겠다며, 3개월 이상 요금을 체납하는 가정에 대해선 무조건 물 공급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세계은행은 아구아스의 지분 5%를 매입하는 한편 9억여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지원하는 등 아르헨티나를 ‘상하수도 민영화의 시범사례’로 만들기에만 골몰했다.
요금이 급격히 인상되고 약속했던 인프라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불만이 쌓여갔다. 1997년 아르헨티나 의회는 자체 진상 조사를 통해 아구아스 쪽이 시설투자를 포함해 계약 내용을 45%도 지키지 않는다고 폭로했다. 신규투자를 하기로 했던 가압시설과 지하 수도관은 3분의 1 수준도 건설하지 않았고, 하수시설 부문에서도 약속한 투자액(4890만달러)의 5분의 1 수준인 940만달러가량만 투자했다는 게다.
그 결과는 극심한 환경오염으로 이어졌다. 아르헨티나 감사원이 2003년 발표한 감사 결과를 보면, 아구아스는 시설 부족 등을 이유로 관할 하수량의 12% 남짓만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처리되지 않은 하수는 고스란히 리오데라플라타강으로 흘러들었다. 당시 현지 시사지 <엘 포르테오>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 7개 지역에서 아구아스가 공급하는 물은 마실 물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질산 수치가 높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아구아스가 연평균 20%를 넘는 순익을 내는 사이 민영화 이후 10년 새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의 가정용 상수도 요금은 88.2%까지 치솟았다. 같은 기간 아르헨티나의 물가상승률이 7.3%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2001년 아르헨티나 경제가 다시 위기로 내몰리며 물가가 치솟자 아구아스는 다시 요금 인상안을 꺼내들었다. 다만 이번엔 사정이 조금 달랐다.
다시 국영화한 뒤 각종 송사에 시달려
경제위기가 극심해지면서 2002년 초 아르헨티나 정부는 모든 공공요금을 동결했다. 이듬해 아르헨티나 정부는 아구아스를 포함한 공공부문 민영화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아구아스 쪽은 아르헨티나 정부를 세계은행에 딸린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ICSID)에 제소하겠다고 위협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결국 2006년 3월 아구아스 쪽과 맺은 계약을 파기했고, 업체 이름을 ‘아구아스 이 사네아미엔토스 아르헨티노스’로 바꿔 국영화했다. 이 과정에서 아구아스 소속 노동자의 절반가량이 다시 일자리를 잃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아르헨티나 정부 쪽 자료를 보면, 1993~2006년 아구아스 쪽은 전체 계약 사항의 10% 남짓만 이행하는 데 그쳤다. 그럼에도 아르헨티나 정부는 오늘까지 수에즈 등이 제기한 각종 송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민영화가 약속했던 ‘장밋빛 미래’의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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