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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 연대의식의 초심을 버리지 말라!! - 평당원 홍기원, 나의 대선평가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2. 26. 16:46

나의 대선평가2


                               홍기원 창조한국당 평당원




1. 캠프와 당의 관계




   전재경 창준위 집행위원장은 인터뷰에서 창준위 시절 캠프와 당과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예비 캠프가 무소속 캠프였는데 빨리 당의 캠프로 연착륙해야 된다는 주장을 했다...... 나는 ‘당이 캠프 저변을 형성해야 한다. 캠프가 당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당이 캠프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캠프에 전권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김헌태 정무특보는 당과 캠프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캠프를 중심으로 가는 것은 타당도 경선 때는 캠프를 중심으로 간다. 아직 그 당의 대표 후보가 아니기 때문에 경선 때는 모두 캠프가 중심일 수밖에 없다. 기존 정당의 경우 공정경선을 위해 당직자가 개별 캠프에 참가하지 않는다. 경선에서 확정된 이후에도 모든 대선후보에게 있어서 당 중심이 아니라 캠프가 중심인 것은 당연하다.


정동영의 선대본도 정동영 캠프 중심으로 꾸려졌다. 이명박 선대본에서 친박근혜 계열은 거의 활약하지 않았다. 선대본에서 당 중심으로 선거가 꾸려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친박근혜 인사들은 선대본에 이름은 올라가지만 그냥 이름만 올려놓는 정도다. 어떤 대선도 캠프 중심으로 움직인다.”




  당과 캠프의 관계에 대해 위 두 입장은 차이가 난다. 그러면 현실에서는 어떻게 진행될까?




  모든 대선 후보는 캠프를 먼저 차린다. 당내 경선을 하는 대선후보도 마찬가지다. 캠프를 먼저 만든다. 캠프에는 당내 사람도 들어가고, 당외 인사도 들어간다. 예로 이명박 캠프에는 한나라당 당원 아닌 사람들도 캠프 활동을 하면서 대선후보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대의원 확보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이명박이 대선후보로 확정되자 그 다음에 출범하는 것이 한나라당 중앙선대위가 된다. 한나라당 중앙선대위에는 박근혜 쪽 사람들도 임명되지만 주로 이명박 캠프가 주도하면서 중앙선대위를 꾸려가게 된다. 대선은 캠프가 끝까지 주도해 나가는 것이다. 실제 진행되는 기존 정당의 대선후보 선출과정과 선대위 출범 과정을 이해하면 위 두 입장에서 어느 쪽이 현실적인가 알 수 있다.




  문제는 문 후보의 경우에는 당이 건설되어 있지 않고 캠프가 먼저 만들어지고 당이 후에 만들어졌다는 특수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에 있어서도 문 후보 캠프가 8월 23일 출마선언을 하면서 먼저 만들어지고 10월 30일 창당대회를 끝낸 당 조직이 뒷받침하는 모양새를 취했기 때문에 2달 정도 경선을 했다라고 생각하면 문제는 해결되었다.




  애초 경선은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문 후보 조직의 당과 캠프 관계에서 가장 큰 문제는 캠프와 창당과정에 있는 당 사이의 유기적 소통의 문제였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나의 대선평가1>에서 지적했지만 전재경 창준위 집행위원장은 10월 14일 창당발기인대회 때까지 캠프 사람들에게 창당과정에 대해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다. 소통에 대해선 어떤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하고선 10월 14일 이후 ‘당이 캠프를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당에 정책위원회도 두고, 홍보위원회도 두었다. 이 조직들이 캠프에서 하는 문 후보의 정책과 홍보에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캠프 쪽 정책, 홍보조직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원칙적 사고는 그 원칙적 사고가 올바르다고 해도 마찰을 빚기가 쉽다. 하물며 그 원칙이 올바른 원칙이 아닐 때 마찰 정도는 훨씬 심각성을 띠게 된다. 캠프와 당의 관계에서도 그랬다. 전재경 창준위 위원장을 비롯하여 창당과정에 있던 주요 당 관계자들이 캠프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계속 캠프와 당 사이를 소통시켜야 했다. 문 후보를 조직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당이어야 했기 때문에 캠프와 당은 적극적인 소통을 계속 유지했어야 했다. ‘캠프가 당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당이 캠프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유연하지 못한 기계적인 전재경 창준위 집행위원장의 사고는 캠프와 당 사이에 금을 확실히 긋는 이분법적 사고의 전형이다. 캠프 쪽은 정치권세력이 판치는 곳이고, 당은 시민사회세력이 순수성을 지키는 곳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문 후보 조직의 작지만 강한 조직으로 만드는 융합력을 가장 저해하는 방해물이 되었다. 그리고 이 이분법적 사고는 대선 이후에도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는 사고방식이다.




2. 임시 선대본에서 중앙선대위 출범까지




  전재경 창준위 집행위원장의 캠프 일 관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무렵, 김영춘 의원은 10월 12일 통합신당을 탈당해서 문 후보 지지선언을 했다. 처음에 김영춘 의원은 창조한국당에 입당할 생각이 없었다. 전국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문 후보의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조직화해서 외곽에서 문 후보와 창조한국당을 돕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캠프의 급박한 상황은 김영춘 의원이 외곽을 돌면서 자원봉사자 조직을 만들고 하는 조금은 느슨한 방식의 활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캠프 상황이 너무 절박했다.




  그 당시 캠프 임시 선대본부장은 이계안 통합신당 의원이 맡고 있었다. 이계안 의원도 창준위 시절 전재경 집행위원장처럼 아침회의만 마치고 나면 사라져 버리는 일을 되풀이했다. 캠프의 많은 일들이 결정이 되지 않고 미루어지고, 쌓이고 있었다. 이계안 의원도 캠프로부터 일을 확실히 해달라는 요구를 계속 받고 있었다. 이것은 이계안 의원에게 부담이었다. 이계안 의원은 김영춘 의원한테 자기가 하던 일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여러 루트에서 캠프 사정이 어렵다는 보고를 받고 있었던 문 후보도 김영춘 의원에게 캠프를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김영춘 의원은 일단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이계안 의원이 주재하는 아침 캠프회의에 두 번 옵서버로 참석을 해보았다. 캠프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외곽에서 지원만 하다가 막상 본진이 굴러가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불안이 커져 갔다. 할 수 없었다. 캠프를 맡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10월 24일 임시 선대본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캠프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10월 24일 당시 캠프 상황을 김영춘 의원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선준비가 얼마나 안 되어 있었냐고 하면 홍보팀이 이름만 있었지 홍보를 담당할 책임자가 선정되어 있지 않았다. 홍보담당자 이름만 있었고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일을 진행해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유세팀 준비도 전혀 되지 않았다. 아예 개념조차 없었다. 공보일은 인적 배치가 되어 있지 않았다. 말하자면 대선을 치를 수 있는 캠프가 아니었다. 캠프 회의는 이름뿐인 캠프 회의였다. 명목상 역할분담만 있었을 뿐이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역할을 분명히 해주는 것이었다. 캠프 자원을 총괄 평가해서 캠프 조직을 재배치하는 것, 책임자를 분명히 해주는 것, 뒤죽박죽된 인선을 정리해서 그 일을 맡아서 책임지고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맡기는 일이 가장 먼저 한 일이었다. 홍보물은 보통 선거 3달 전에 홍보회사를 정해서 캠프의 홍보기획단하고 상의해야 하는데, 내가 임시본부장을 맡을 때까지 홍보물, TV광고, 신문광고 등 전부 작업이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유세차의 경우도 김평수 씨(유세기획단 부단장)를 급히 수배해서 일을 진행하게 했다. 선거 한 달 전이었기 때문에 외부 인사를 영입해 일을 진행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보고 내부 인적자원을 재배치하는 쪽으로 갔다.” 




  임시선대본부장을 맡고 일주일 동안 캠프를 정리하고 난 다음 김영춘 의원 앞에 닥친 문제는 캠프와 당의 관계 정리 문제였다. 캠프 쪽 사람들의 대부분의 의견은 대선을 하려면 캠프와 당이 이원화되어서는 안 되고 일원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다른 대선 선대위에 비하면 조직세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입장에서 캠프와 당의 조직이 일관된 지휘체계를 유지해야 그나마 가지고 있는 힘도 극대화된다는 절박성에서 나온 주장이었다.




  전재경 창준위 집행위원장보다 문 후보를 만난 역사가 더 오래된 측근인 김재현 부속실장도 김영춘 의원으로 일원화되어야만 대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제 문 후보의 결단만 남았다. 문 후보는 김영춘 의원한테 전권을 주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김영춘 제1대 창조한국당 집행위원장은 창준위 상근자들에게 12월 19일까지 임시 당직을 주는 인사를 11월 7일 단행하면서 캠프와 당의 일원화 작업을 시작했다. 실무단위에서는 당 조직과 캠프조직을 섞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중앙선대위를 규모 있게 출범시키기 위한 외부 인사 영입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영입 인사는 거의 없었다. 대선후보 등록이 코앞에 닥친 시점에서 더 이상 중앙선대위 출범을 늦출 수가 없었다.




  김재현 부속실장, 김헌태 정무특보, 김호산 사무차장이 중앙선대위 인사TF가 되어 밤을 새워 가며 빈칸을 채워 넣었다. 문 후보를 비롯한 3인 공동대표의 재가를 얻어 11월 23일 중앙선대위를 출범시켰다.




3. 대선 재정계획




  이 부분에 대해선 김영춘 본부장의 인터뷰를 길게 인용하겠다. 이 부분에 대해 문 후보 인터뷰는 하지 못했다.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문 후보 고등학교 동기이자 문 후보가 임명한 대선 회계책임자인 서재영 선거사무장은 한마디만 해주고 인터뷰를 거부하였다.




  대선 이후 대선자금에 문제가 있었다면 지체 없이 중앙위원회를 열어서 당 공식 조사 기구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모든 조사를 마치고 공식 발표를 했어야 했다. 그렇게 되지 못한 점이 아쉬움을 넘어 통탄스럽다. 일단 김영춘 본부장과 인터뷰한 내용을 여기에 올린다.




  “대선에 들어가기 직전에 대선 예산계획을 선거캠프에서 처음 140억 계획을 잡았다. 서재영 사무장 책임 하에 실무단별로 예산계획과 사업계획을 세워 올리라 하여 수합해서 전체 예산계획을 세워 보니 140억이 되었다. 이 140억 계획서를 후보에게 올렸다. 올렸더니 문후보가 자기는 30억만 쓰기로 했는데, 해서 내가 “친구, 지인에게 특별당비를 받거나 차입하는 등 어떻게 해서든 선거자금을 마련해 주십시오”하니 문후보가 “노력하겠다”고 했다.




  일주일 정도 있다가 자금조달에서 어려움이 있다는 기미를 알아차렸다. 그래서 축소 지시를 했고 축소된 예산은 100억 밑으로 내려갔다. 그 축소계획은 날짜별로 상세하게 사업별, 구체적 날짜별로 사무장이 후보에게 보고하게 했다. 사무장이 실지로 보고했다고 들었다. 모든 돈의 수입과 지출에 있어서 내가 관여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돈에 관해서는 나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사무장이 후보하고 직접 이야기하게 했다. 나는 집행만 했을 뿐이다.




  11월 25일부터 11월 30일 선거사무원 유급 중단 선언 때까지 중도금이 지급 안 되는 상황이어서, 캠프에서는 특별당비 모금을 결의했다. 그래서 내가 문 후보에게 “후보님이 지인들께 특별당비를 좀 내 주십사고 부탁하십시오”했다. 그러나 실제로 11월 하순까지 모금된 특별당비는 선대본 간부들과 당원들을 중심으로 모금된 6억 정도였고, 4억 정도 차입금이 마련되어서 급한 불은 껐다.




내가 “왜 이렇게 돈 마련이 안 됩니까?” 하고 후보와 사무장에게 이야기 하면 답답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때 문 후보가 “나는 30억을 쓰기로 했는데 왜 당에서는 돈을 안 만들어 주는 거냐?” 하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선거자금이란 규모가 큰 정당이라면 국고보조금도 수백억 원씩 받고 해서 당이 중심이 되어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당 중심축, 후보 보조축 형식으로 가는 것이 맞는데, 지금 우리 창조한국당은 신생정당이고 더군다나 군소정당이어서 후보자가 주도적으로 구해 올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남의 선거 치르듯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무슨 일이든지 일을 하면 돈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수입과 지출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후보님은 대통령선거를 치를 생각을 하면서 수입과 지출 계획조차 세우지 않으셨습니까? 후보가 CFO(재무책임자)를 정하고 재정조달과 지급 책임을 맡겨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140억 계획에 대해 후보가 “돈이 왜 이렇게 많이 드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선거를 치르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해서 잡았다. 선거사무원을 70% 정도 쓰는 것으로 잡고 신문광고, TV광고, TV연설 등을 70% 정도 하는 계획이다.”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140억 계획에 대해서도 집 앞에 가서 설명을 다 해주었다.




선거가 끝나고 후보가 “돈이 왜 이렇게 많이 들었느냐?” 해서 나는 “예산 집행을 애초 잡은 대로 다 못해서 아쉬운 거지 그 돈이 많이 쓴 것이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법정 홍보물만 전국에 2천100만부입니다. 이것은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인데 많이 들어갔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애초 30억으로 선거를 치러 달라고 했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법정홍보물도 16페이지 하지 않고 4페이지로 했을 것입니다. 유세차도 후보 유세차만 하고 다른 유세차는 다 포기했을 겁니다. 애초 140억 예산계획을 제출했을 때 딱 부러지게 말씀하셨어야지, 그때는 노력해보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했다.”




  김영춘 본부장이 대선과정에 가장 실수한 부분은 처음 140억 예산을 잡을 당시 후보의 “노력해보겠다”는 말을 믿고 밀고 나간 측면이다. 문 후보가 유한킴벌리의 CEO였고 사업하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그 정도 재원은 마련할 수 있겠지 하고 믿고 의욕 있게 일을 추진한 것이 문제였다. 들어올 자금의 규모를 먼저 확실히 다짐받지 못한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문 후보의 자금 동원력이 생각만큼 크지 못하다는 사실을 미리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LED 유세차량 80대 임대비로 21억이 쓰였는데, LCD 차량이 더 싸긴 하지만 낮 시간대에 화면이 보이지 않는 단점이 있어 가격 대비 홍보 효과를 고려해 최선을 선택한다고 한 것이 이것인데, 자금난의 여파로 그만 값비싼 선택이 되고 말았다. 차량 수급이 시급한 상황만 아니었더라면 민노당처럼 1톤트럭을 셋팅해서 임대하는데 380만원(민노당 서울시당 임대가격)이 드는, 소위 깡통차량으로 밀고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면 전국 200군데에 선거연락사무소를 두더라도 7억 6천 예산으로 유세차량을 확보하고 되고 나머지는 T.V 광고, 차량유지비 등으로 자금을 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 자금이 얼마 들어올 것이라는 계획이 확실히 잡히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이런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정치권이나, 정치부 기자들의 상식, 그리고 일반인의 상식으로 볼 때 97억으로 대선을 치렀다는 것은 그나마 알뜰하게 치렀음을 뜻한다. 이는 자원봉사자의 헌신적인 노력봉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앞으로 대선에서 어느 진영이든 문 후보 캠프만큼 규모를 갖추고 움직였을 때 97억 정도 대선자금을 쓰고 대선을 치룰 수 있는 캠프는 아마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 이 정도 자원봉사자의 헌신을 다시 어느 조직에서 만들 수 있겠는가?




4. 득표율 5.8%의 의미




  문 후보는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5.8% 137만 5천표를 얻었다. 12월 16일 선거막판에 터진 이명박의 광운대 BBK 강의 동영상으로 가장 이득을 본 후보는 정동영과 이명박 후보였고,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후보는 문 후보였다. 그리고 대통합민주신당에서 전국적으로 날린 ‘이명박 후보와 오차 범위 내 접전’ 문자메시지는 사표방지 심리를 자극해 문 후보에게 올 많은 표를 뺏앗아가는 작용을 했다. 그 사표방지 심리를 뚫고 5.8%를 획득한 것은 정말 기적이었다. 또 선거운동을 시작하기 한 달 전 캠프와 당의 상태를 생각한다면 정말 기적적으로 획득한 표였다. 5.8%의 획득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다. 언론에서 이명박 후보 다음으로 문국현 후보가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고 이야기한 것은 정당한 평가였다.




  5.8% 137만 5천표는 문 후보가 선대위를 측근에 맡기지 않고 영입한 김영춘 의원에게 믿고 맡기는 연대의 정신의 결과 나올 수 있었다. 11월 선대위가 연대의 정신으로 개방된 이후 저명인사들의 합류는 별로 없었지만 실무적으로 뛸 수 있는 많은 유능한 인재들이 결합했다. 다니던 직장을 2~3개월 정도 휴직하고 나온 사람들, 멀리 몽골에서, 캐나다에서 날아온 사람, 평생 투표하는 것 밖에 정치행위를 하지 않은 주부들이 문 후보의 가치에 공감해서 문 후보를 돕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들어왔고, 선거연락소장을 맡았고, 중앙에서 지역에서 선거에 나섰다. 정말 우리나라 역사상 전대미문의 ‘자원봉사 대선 캠프’였다. 문 후보 캠프에 모여든 각자의 사연을 책으로 엮으면 감동적인 이야기가 어디 하나둘이겠는가. 그 모든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자기 돈 써가며 자발적으로 뛴 결과가 5.8% 137만 5천표였다. 그 표는 그냥 137만 5천표가 아니었다. 금으로 치면 순도가 매우 높은 금이었다. 언제 배 이상 튀어 올라 200만, 300만이 될지 모르는 표였다.


 


공식적으로 97억을 써서 나온 표였지만 자원봉사를 유급으로 계산하고, 자원봉사자, 지지자들이 알게 모르게 쓴 비용을 계산한다면 97억의 배가 넘는 선거비용으로 나온 표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공식으로 계산된 선거자금뿐 아니라 숨어있는 선거자금을 계산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2~3개월 무급으로 자원봉사했던 사람들은 적어도 2~3백을 바친 것이 되고, 또 개인적으로 몇 백만원씩, 또는 1천만원 넘게 쓴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었으며, 1억이 넘는 돈을 쓴 사람도 있었다. 5.8%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해석할 때 ‘문 후보 혼자 선거자금 다 내서 치룬 선거’라는 오독이 가능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문 후보 혼자 선거자금을 다 댄 선거가 아니었다. 문 후보가 가장 큰 돈을 내놓았지만 문 후보 혼자서 선거자금을 다 책임진 선거가 아니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돈과 노력과 시간이 모여서  이루어진 선거였다.




5. LED 차량 문제



  지난해 연말 중앙당 브리핑룸에서 열린 시도당 사무처장회의(2007. 12. 27일)에서 충북도당 이광용 사무처장이 질문을 했다.




“영상홍보차량 누가 제안했고 어떻게 집행됐는가?”




이에 대해 전재경 전 최고위원이 답변했다.


“LED 차량에 대해서 LED 차량 인수 일주일 전에 문 후보에게 지역 시도당 위원장 두세 사람이 나한테 전화해 준 내용을 전달했다. ‘LED 차량이 비싸기도 하고, 기사도 따라 붙어야 하고, 낮에는 잘 보이지도 않고, 효율도 떨어진다. 시도당 1대면 되지 80대면 너무 많다. 재검토하시라.’는 말을 전달했다. 그때 문 후보께서 바로 전화를 들어 확인하셨다. 이미 5억원이 지급되었다는 말을 듣고 격노하셨다.


  LED 차량 사장이 당사를 방문해서 이런 말을 했다. LED 차량 사장이 문 후보에게 ‘문 후보는 깨끗한데 창조한국당 위아래 다 썩었다. 리베이트를 3군데에서 요구했다.”


전재경 전 최고의원이 공식석상에서 LED 차량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 2008년 1월 22일 전재경 전 최고의원이 나와 인터뷰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선 끝나고 시도당 사무처장 비공식 회의가 있을 때 인사하러 간 적이 있다. 그 회의는 비공식회의라서 내가 주재할 만한 그런 회의가 아니었다. 또 공식의제를 다룬 적이 없었다. 나는 사무처장들에게 식사나 하시라고 내 카드를 준적은 있다. 그 자리에서 나는 LED 차량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라고 했다.




  하지만 조상식 조직국장은, 여세현 조직팀장(당시)에 이어 정재원 조직팀장(당시)과 다시 통화로 확인한 뒤




“그때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전재경 전 최고의원이 그런 말을 한 모양이다.”




라고 확인을 해주었다.




전재경 전 최고의원이 나와 인터뷰한 내용은 기억을 잘 못해 생긴 착오였는지, 아니면 자신에게 불리할 것 같으니까 거짓말을 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12월 27일 중앙당 브리핑룸에서 시도당 사무처장을 비롯한 30명이 모인 자리에서 그가 한 발언은 아무리 비공식적인 자리라고 우길지라도 그것을 비공식 발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일파만파의 폭탄성 발언이 당시 ‘당 최고위원’의 신분에 있었던 사람의 입에서 대책 없이 나올 수 있었던 사정, 이것이 대선 이후 창조한국당의 가장 큰 문제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열심히 뛴 죄밖에 없는 문국현 캠프의 모든 자원봉사자들에게 ‘부정혐의’의 칼날이 날아갈 수 있는 이런 심각한 문제를 당 공식 조사기구를 꾸려 조사하고 당의 공식발표 외에 일체 유언비어가 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단속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당 최고위원이라는 사람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지도부의 다른 어느 누구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내가 전재경 전 최고위원에게 LED 차량 사장 이야기는 어떻게 듣게 되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선 끝나고 2군데 사석에서 LED 차량에 대해 말한 적은 있다. 서재영 사무장이 몇 사람 있는데서 한 이야기를, 그러니까 서재영 사무장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언한 적은 있다. 전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LED 차량 사장이 문 후보를 만나면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자기는 많이 다쳤는데 지방에 오면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그 LED 차량 사장이 문 후보에게 ‘문 후보는 깨끗한데 창조한국당 위아래 다 썩었다. 리베이트를 3군데에서 요구했다.’라는 것이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전재경 전 최고의원과 인터뷰가 끝나고 나는 서재영 선거사무장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서재영 선거사무장은




“LED 차량은 대선 끝나고 나서 바로 전재경, 이수원(현 재정국장), 나 이렇게 익산(‘김제’가 맞음*) 내려가서 그쪽 사장을 같이 만났다."




* LED 차량 계약을 주도한 김평수 유세기획단 부단장 보고서에 의하면 LED 차량 회사는 김제에 소재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라는 사실만 확인해주고, 자기가 지금 바쁘니 다음날 오후 2시에 전화하라고 했다. 다음날 오후 2시에 그에게 다시 전화하니 ”신봉호 교수에게 다 말했다. 물어볼 것이 있으면 신봉호 교수에게 물어보라”며  더 이상의 인터뷰을 거절했다.




하지만 이 한마디 인터뷰에서도 전재경 전 최고위원이 거짓말한 것이 드러난다. 서재영 사무장의 말대로 전재경 전 최고위원, 이수원 현 재정국장, 서재영 중앙선대위 선거사무장 이렇게 세 사람이 익산(‘김제’가 맞음)에 내려가서 사장을 만난 다음날, 문 후보를 데리고 익산으로 다시 내려갔다.




김영춘 본부장은 이 부분에 대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거가 끝난 후 실무자가 나에게 보고한 바에 따르면, 전재경 박사 등은 대선 마치기 직전부터 몇몇이서 전주(‘김제’가 맞음)회사 찾아가서 조사하면서 업체 사장에게 ‘김영춘 의원한테 다 들었다. 우리에게 이실직고해라. 이면 계약한 것 솔직하게 이야기하라’고 하자 사장이 ‘왜 나한테 그런 걸 물어보느냐. 할 이야기는 후보에게 직접 하겠다’ 고 해서 문 후보를 데리고 전주(‘김제’가 맞음)회사에 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해서 문 후보가 갔고, 문 후보는 ‘내가 가면 다 이야기해 주겠다해서 갔는데 그 사람이 횡설수설해서 소득이 없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문 후보가 익산(‘김제’가 맞음)에 갔다 온 다음날 김영춘 본부장은 문 후보에게 대선과정에서 집행된 97억에 대해 설명을 다해 주었다. 실무자들에게 양심을 걸고 바른말 하라고 해서 모든 것을 듣고 나서 대선과정 재정집행에서 부정이 없었음을 확인하고 문 후보에게 다 말해 주었다. 하지만 문 후보는 재정 집행에 불투명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조사를 해보아야겠다는 뜻을 비쳤다. 김영춘 본부장은 집행위원장 자리를 사임했다.




김영춘 본부장은 이 부분에 대해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대위를 해체하면서 선거책임자도 어떤 형태로든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임했다. 그리고 선거사무원 미지급금 처리 문제 등은 내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고 해결되고 내가 없다고 안 되고 하는 일의 성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후보를 비롯해서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안을 찾았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후보와 측근들이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썼냐고 하는 상황에서 미지급금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LED 차량에서 리베이트를 착복한 사람인양 나를 몰아가는 상황에서 그런 대책을 세울 수 없었다. 내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으면 조사를 못하니까 마음대로 조사하게 자리를 사임하고 내버려 두었다. 그때 내가 집행위원장 자리를 지키면서 조사위원회 이런 것을 꾸려서 대응했다면 그때 당이 아마 깨졌을 것이다. 아무리 아마추어라도 조사하면 알게 되겠지 하고 내버려두었다. 정말 선거 시장을 몰라도 한참 몰라서 하는 소리라는 것을 조사해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평수 그 친구 보고도 자세히 보고하라고 했다.”




  문 후보가 다보스 포럼에 가 있을 때 이수원 재정국장은 대선재정보고서를 문 후보 홈페이지와 당홈페이지에 올렸다. 그 보고서에서 LED 유세차량 항목은 아예 없었다. 한 달간 조사했지만 아무런 결과가 없었던 것이다.




6. 대선선거비용 당 차입금으로




“문 후보는 왜 평생 걸려 모은 재산을 ‘밑 빠진 독’ 같은 선거에 쏟아 붓고 있는 것일까. 참모들은 문 후보의 독특한 성품과 재산관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출마하기 전부터 문 후보를 도운 고원 전략기획단장은 “후보의 성품이 그렇다.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다 싶으면 사회단체든 어디든 기부해 왔다. 자기 재산에 대해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며 “남의 돈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문 후보 자신은 최근 참모들이 ‘선거 이후’를 걱정하자 “이제 집밖에 안 남겠죠, 뭐”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2007.12.3 한겨레신문 <전 재산 쏟아 붓는 문국현 “집밖에 안 남겠죠 뭐”>기사






“전재경 최고위원은 "처음에 문 대표가 선거자금으로 내놓은 30억원을 초과해 사용된 자금 중 45억 원 정도가 차용증을 쓰고 당이 빌려가는 형태로 처리됐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됐는데, 이 돈을 당의 차입금으로 정리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논란"이라며 "이 돈을 차입금으로 할지 문 대표 개인이 낸 돈으로 할지 결정해야 하는 국면"이라고 전했다.


  전 최고위원은 사견을 전제로 "당의 사당화를 비판하는 쪽에서 오히려 차입금으로 처리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며 "대선 때 쓴 돈을 전부 문 후보에게 부담시키면 (오히려) 사당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2008.1.22일 오마이뉴스는 <총선 전략·당 차입금... 창조한국당 '내홍'>기사






  “이날 창조한국당이 대변인실 명의로 내놓은 보도 자료에 따르면 문국현 대표는 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약 74억 원의 개인재산을 선거운동을 위해 지출했다. 창당 이전에는 예비후보로서 사재를 사용했으나, 창당 이후에는 당비가 부족하고 재원이 없는 상황에서 많은 비용을 문국현 대표의 개인 재산에서 지출했는데 이를 '차입' 형식으로 회계처리 했다. 이에 따라 최종 대선이 끝날 때까지 총 62억원을 후보로부터 차입했고, 이를 1월 13일 중앙위원회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대변인실은 "문 후보는 '집 한 채는 남았다'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어 선거비용 전액을 부담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창조한국당이 공당으로서 선거비용 대부분을 후보 개인에게만 의존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이견이 있다"며 "이 문제는 2월 초 중앙위원회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8.1.25 미디어오늘 <문국현 쪽 “한겨레, 오마이 오보다”>




  대선자금 당 차입금으로 하는 문제에 대해 3개의 언론보도를 인용해 보았다. 작년 12월 3일 한겨레신문 “집 밖에 안 남겠죠 뭐”라는 기사가 나갔을 때 역시 문국현이구나하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했다. 하지만 대선자금 97억 중 미지불금 12억을 빼면 85억이 남고, 85억 중 당비로 충당한 10억을 빼면 75억이 남고, 75억 중 문 후보가 대선자금으로 쓰기로 했던 30억을 빼면 45억이 남는다.




  이45억을 당 차입금으로 하는 문제에 대해 1월 13일 중앙위원회는 그냥 보고만 했지 당차입금으로 하겠다는 중앙위원회의 결의 같은 것은 없었다. 그리고 나서 ‘대선자금 당차입금으로’ 라는 언론보도가 나가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1월 13일 중앙위원회에서 공식 안건으로 올려 정식으로 처리되었어야 했던 문제였다. 대선 이후 창조한국당의 모든 문제는 이런 식이었다. 공식이 아니라 사적으로 모든 정보가 나갔다. 당직자는 언론보도를 보고 ‘아! 그런 문제가 있었구나!’하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1월 28일 대선회계보고 마지막 날 선관위에 보고할 때 44억이 당 차입금으로 결정되어 보고 되었다. 이 중요한 문제가 당의 최고의결기관인 중앙위원회 결정사항이 아니라 한 실무국장인 재정국장이 결정해서 선관위에 보고해버린 것이다. 공당이 이런 문제를 그냥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문제는 1월 30일 최고회의에서 ‘제17대 대선회계처리방향의 건’이란 안건으로 2월 3일 중앙위원회에 올리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2월 초 중앙위원회에서 논의하기로 대변인 발표까지 해놓은 사항이었다. 하지만, 2월 3일 중앙위원회에서는 이 안건이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이제 창조한국당은 대표자리를 준다고 해도 44억 빚이 겁이 나서 받기가 꺼려지는 그런 당이 되어 버렸다. 이제 창조한국당에 44억 족쇄가 채워졌다.




  전재경 전 최고의원처럼 “대선 때 쓴 돈을 전부 문 후보에게 부담시키면 사당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듣도 보도 못한 논리로 국민들을 우롱할 것이 아니라  문 후보도 살 집은 있어야 하고 생활은 해야 되지 않는가하는 정도에서 대선자금 일부를 당이 책임지는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정이 당의 공식입장으로 나갔어야 했다. 문 후보의 대국민이미지에 치명적이 될 사항이 공당에서 질서정연한 입장으로 나가지 못했다. 결과는 바로 국민의 목소리로 되돌아 왔다.




국민은 냉철하게 보고 있다. 며칠 전 한 택시 기사는 이런 말을 했다.




“문국현 그 사람 참 좋게 보았는데 그 사람도 본래 장사꾼아니오. 내가 장사를 해보아서 잘 알지.”




  대선자금 당 차입금으로 전환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서 문 후보 하면 떠오르던 감동도 없어져 버렸다. 국민들의 감동도 유지시키고, 대선자금으로 인한 문 후보의 재정적 어려움도 풀 수 있는 정도가 있었음을 생각할 때 정도를 벗어나면 국민의 마음도 돌아선다는 냉정한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맺으면서




  며칠 전 ‘문국현과 함께 하는 7080’ 쫑파티를 했다. 12월 1일 대학로 대명거리 유세 때 외대 민주동문회 회장이 후보 유세차에 올라가 우리가 조직한 1501명의 이름으로 <7080 문국현 후보 지지선언문>을 읽었을 때가 ‘문국현과 함께 7080’이 가장 행복했던 때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은평에서 유세차를 돌리면서 전화로 상황을 중계 받고 있었다.




  사람은 뛰고 있을 때가 괴로운 것 같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뒤돌아보면 그것을 느낀다. 후보는 후보일 때 가장 행복하다. ‘문과 함께 하는 7080’ 회원 중 시의원에 출마했다 낙마한 경험이 있는 한 선배에게 물어보았다.




"얼마나 썼나요?“


“한 3억.”


“휴유증은 얼마나 오래 가던가요?”


“한 6개월 갔지. 하지만 사무장에 대한 미운 마음은 10년이 지나도 가시지 않데.”




  그렇다. 후보 마음은 그런 것이다. 지난 제17대 총선에서 일산을에서 2천 100여 표 차이로 떨어진 김두수 전 전략기획위원은 휴유증이 1년은 더 가더라는 것이다. 아예 3일은 앉으면 눈물이 났고, 1개월 정도는 멍하니 지냈고, 1년 동안은 뉴스에서 국회만 비치면 저 자리에 내가 앉아있을 자린데 하는 마음이 떠나질 않더라는 것이다.




  그러면 대선에서 떨어진 문 후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대선 막판 여론조사에서 12~15%까지 올라갔던 것을 비추어보면 내심 10%는 넘지 않을까 충분히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5.8%가 나온 것이다. 선거자금으로 97억이나  썼는데 한 푼도 보전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선대위 본부장이 얼마나 미웠을까?


만사가 싫고 그냥 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거의 패닉에 가까운 정신상태에 있는 후보에게 가장 측근이라는 전재경 전 최고의원은 ‘LED 의혹’으로 불을 질렀다. 전재경 전 최고위원, 이수원 현 재정국장, 서재영 선거사무장이 구의원 후보에라도 나서서 떨어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 후보에게 그런 몹쓸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구 의원 같은 작은 선거에서도 선거자금에 대해 후보는 선거가 끝난 뒤 아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선거자금은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문제이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정이 있었다면 공식기구를 통해 조사를 해야 하지만 그냥 의심 가는 정도라면 후보는 선거자금에 대해 말을 꺼내면 안 된다. 자기를 도와주었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서 그냥 말을 삼켜야 한다. 후보는 선거가 끝난 뒤 어두운 방에서 남몰래 혼자서 눈물을 흘릴지언정 선거자금에 대한 말은 꺼내면 안 된다. 선거조직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해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후보가 선거자금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 순간, 그것은 칼이 되어 어디에 꽂힐지 모르는 것이다.




  문 후보의 아마추어 측근들은 이러한 후보의 마음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불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문 후보의 가슴에 불을 지른 것이다.




  선택의 기로였다. 자신의 측근들이 LED 차량 사장을 만나러 가자고 했을 때 따라가지 말아야 했는데 따라간 것, 그리고 LED 차량 사장을 만나고 와서 김영춘 본부장의 말을 신뢰하고 ‘눈 먼 조사’를 벌이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한 것, 이것으로 중앙선대위를 움직였던 연대의 정신은 한순간에 깨어지고 중앙선대위 전체 일꾼을 ‘부정 혐의자’로 취급하는 재정조사 마녀사냥 정국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건너지 말았어야 할 강을 건넌 것이다. 재정조사 마녀사냥 정국은 한 달 이상 계속되었다. 그 동안 당은 완전 식물정당이 되어 버렸다. 간혹 언론에 나오는 기사는 모두 ‘돈 이야기’였다. ‘사람중심’을 목 놓아 외친 정당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온통 돈 이야기뿐이었다. 사람중심 정당이 아니라 완전히 돈 중심 정당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나서 나온 대선재정조사 결과는 모든 혐의에 대해 아무런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나고 말았다.




문 후보는 무엇을 얻었는가?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얻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문 후보 자신의 전 재산과 수많은 지지자들의 돈과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고 바쳐서 이룩한 5.8%의 성과를 이제 거의 다 말아먹어 버렸다.




내가 만약 문 후보의 측근이었다면 문 후보가 무조건 1개월 쉴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눈 먼 대선 재정조사’는 결사적으로 막았을 것이다. 그것이 캠프에서 한솥밥 먹으며 고생한 ‘뭇 자원봉사자 동지들’의 가슴에 칼을 꽂게 되리란 것, 오로지 ‘문국현 캠프에서 일한 명예’만을 값진 보상으로 여긴 그 선하디 선한 사람들을 마침내 적으로 돌려세우게 되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전재경 전 최고의원을 비롯한 문 후보 측근들은 바람직한 길로 가는 대신 ‘역주행’했다. 8.23일 이후 하루에 3~4시간 밖에 자지 못하고 강행군한, 역대 대선후보 가운데 가장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문 후보에게 잠시도 쉴 틈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대선 때보다 더 괴로운 문제를 던져 주었다.




  이런 사람들이 무슨 측근인가? 후보야 어찌 되든 자신들이 당 주도권을 다시 장악하기 위해 이른바 ‘대선 재정조사’니 뭐니 하며 죄 없는 동지들의 가슴에 칼을 겨눈 그들이야말로 후보를 죽이는 사람이 아닌가. 이런 자들이 어찌 후보 곁에서 후보를 위해 헌신하는 측근이란 말인가.



  문 후보가 정치에 입문한 뒤 찾아온 두 번째 기회는 바로 5.8%, 137만 5천표였다. 대선 직후 눈 먼 측근들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이른바 ‘대선 재정 문제’를 가슴에 파묻어 두고서 상징성 있는 지역구 서민주택으로 주소지를 옮기고 언론에 보도된 대선 소감 기사 제목처럼 “재산은 잃었으나 138만 명의 마음을 얻었다. 국민이 행복할 때까지 정치하겠다!”고 선언했더라면 지금쯤은 특별당비로 대선 미지불금을 다 청산하고, 당 지지율도 10% 가까이 올랐을 것이고, 당 공천심사위에는 예비후보들의 발길이 분주하지 않을까…. 당이 활성화되다 보면 당 조직세가 더 커지고, 그러다 보면 대선자금 문제도 특별당비로 자연히 해결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았을까….




  상상하다 보면 원통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이게 어떻게 마련한 기회였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정을 바쳐 이룩한 절호의 기회였는데. 이런 기회를 놓치다니! 문 후보가 새 정치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이렇게 놓치고 말다니!




  문 후보는 유한킴벌리에서 21년 동안 업무를 익힌 끝에 투명경영을 해서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정치에 입문한 지 고작 4개월 만에 눈 먼 측근들에 휘둘려 다름 아닌 ‘클린정치’의 이름으로 한솥밥 먹으며 고생한 캠프 식구들에게 칼을 휘두르다니!




  ‘클린정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문 후보가 진정 ‘클린정치’를 하려면 죄 없이 누명을 덮어쓰고 억울함을 호소하다 지쳐 마침내 돌아서는 저들의 눈물을 씻어 주고 저들의 발길을 돌이키게 해야 한다. 그리고 138만 지지자들에게 그간의 오류를 인정하고, 당권에 눈멀어 패악질을 일삼은 측근들을 내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사실 용단도 문 후보에게 큰 짐이다. 측근들은 문 후보에게 더 이상 짐이 되지 않으려면 문 후보를 잘못 이끈 죄를 뉘우치고 자진해서 당을 떠나야 한다.




  지금이라도 창조한국당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모든 당원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을 해야만 한다.




  대선후보의 자산은 5년은 간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문 후보가 사람 중심 노선으로 돌아와 연대 의식을 되찾는다면, 길은 있을 것이다. 문 후보는 이미 정치적 자산의 99%를 까먹었다. 남은 자산은 1%뿐이다. 그러나 문 후보를 지지한 138만명의 의병들 역시 사람 중심 사회를 만들기 위한 꿈에 바친 정신적 자산의 99%를 까먹고 1%밖에 남아 있지 않음을 문 후보는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해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문 후보가 이를 진정 뼈저리게 반성하고 스스로를 낮춘다면 자신이 까먹은 자산의 99%, 138만명 의병들의 자산 99%를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