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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숭례문에 다크 투어리즘 발길 뜨거워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2. 18. 17:29
[중앙일보 천인성.이현택.안성식] “아빠, 진짜 다 탔네. 어쩌면 좋아….”

17일 오후 1시, 아버지 전석완(40·회사원)씨의 손을 잡고 숭례문 방화 사건 현장을 지켜보던 민우(10·초교 3년)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경북 구미시에 사는 민우·형우군 형제는 이날 처음 숭례문을 찾았다. 민우군은 “책으로만 보던 ‘국보 1호’가 불탄 모습을 보니 너무 슬펐다”며 “내일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본 것을 이야기해 줄 작정”이라고 다짐했다.

전씨 가족은 이날 오전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 왕복에만 4시간여가 걸린 강행군이다. 하지만 “어떤 가족 여행보다 소중했다”고 아버지 전씨는 전했다. 숭례문을 배경으로 형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던 그는 “아이들에게 문화재와 역사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생생한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이날 숭례문 주변은 수천 명의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참사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문화재에 무관심했던 과거를 반성하기 위해서다. 숭례문 화재 현장이 참사 현장을 찾아가 반성의 계기를 삼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대상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현장 돌아보며 깊은 반성”=화재 후 첫 주말인 16, 17일 이틀간 숭례문을 찾은 인파는 1만여 명을 넘었다. 이른 오전부터 해질 녘까지 매 시간 300~500명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왔다. 경북 영주시에 사는 김순기(69·여) 할머니는 버스를 타고 3시간여 만에 숭례문에 도착했다. 그는 “직접 보고 안타까움을 전하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경남 마산시에 사는 한영자(55·여)씨는 인천에 거주하는 동생 숙자(53)씨와 함께 숭례문 화재 현장을 방문했다. 한씨는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가족 단위 방문도 눈에 띄었다. 7, 12세 된 두 딸을 데리고 온 어머니 강정화(43·서울 양천구 목동)씨는 “역사와 전통, 문화재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현장 학습이라고 생각해 나들이 계획을 바꿔 나왔다”고 말했다.

가림막에 설치된 방명록들엔 1000여 개의 애도 글이 가득했다. “숭례문이여, 다시 돌아오면 좋겠어요.(‘부산에서 온 수진’), “후손, 조상님 뵐 낯이 없네요”(‘광주에서 미진’) 등이다.

외국인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16일 밤 입국한 미국인 다스(36·사업가)는 이날 한국 첫 관광지로 숭례문을 찾았다. 외신을 통해 화재 소식을 알았다는 그는 “세계적 문화유산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슬펐다. 잔해라도 보고 싶어 찾았다”고 밝혔다. 일본인 여행 가이드 장자경(55)씨는 “참화 이후엔 관광객들이 먼저 꼭 들러보고 싶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국가적 충격 달래는 치유 요법”=전문가들은 숭례문이 “다크 투어리즘의 대상이 됐다”고 분석했다.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미국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 테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가 대표적 대상지였다. 미국은 테러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현장에 참배객용 관람대를 만들었다. 이듬해인 2002년 그라운드 제로를 찾은 관광객은 360만 명에 달했다.

조민호 한양대(관광학) 교수는 “수치심에 ‘감춰야 한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소실과 복원 과정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면 ‘역마케팅’이 가능한 관광 자원으로 재탄생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숭례문의 추모 행렬은 심리적인 충격을 덜어 내는 국민적 치유 과정이라는 해석도 있다. 황상민 연세대(심리학) 교수는 “생방송을 지켜보던 국민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며 “현장을 직접 보는 것은 심리적 안정을 찾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휴양과 관광을 위한 일반 여행과 달리 재난과 참상지를 보며 반성과 교훈을 얻는 여행. ‘그라운드 제로(사진)’, 유대인 대학살 현장인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수백만 명이 학살된 캄보디아 ‘킬링필드’,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일본의 히로시마나가사키가 이 여행의 대표적인 사례다.

천인성·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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