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교육] “영어만 잘하면 교직개방? 교사자격증 찢고 싶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2. 17. 02:23
[한겨레] 사범대 나와도 한해 임용자 700여명이 고작
“10년 공부 왜 했나” 인터넷에 반발 글 쇄도
“검증 자원 많은데…인수위, 현실 너무 몰라”
“교사가 되겠다는 꿈 하나로 힘들지만 버텨 왔는데 …. 이럴 바에야 교사 자격증을 찢고 싶습니다.”
2년째 교원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예비 교사’ 공아무개(30·여)씨는 3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문에 너무 속상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한국외국어대를 나온 공씨는 영어교사가 되겠다는 결심으로 교육대학원을 2년6달 동안 다닌 뒤 임용시험에 대비해 왔다고 했다. 그는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교사가 되도록 하겠다는 발상은 학교 현장을 학원처럼 보는 것”이라며 “인수위는 교육의 ‘교’자도 모른다”고 말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영어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 전용 교사’ 선발 자격에 테솔(TESOL) 이수자, 영어권 나라 석사학위 이상 취득자, 전직 외교관·상사 주재원 등을 넣는 안을 발표하자, 임용시험을 준비해 왔던 예비 교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임용시험 자료를 주고받는 인터넷 블로그에 ‘투쟁 게시판’을 만들어 대책을 논의하고 있으며, 인수위·언론사 홈페이지 등에 몇천 건씩 의견을 올리고 있다.
사범대를 나와 4년째 임용시험에 도전하고 있다는 서아무개(27)씨는 “영어교육이란 생활·학습·문화수준 등이 다른 아이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가르칠지 고민을 해야 하는 전문영역”이라며 “철저한 검증 없이 기능만 뛰어나다고 교사로 뽑을 경우 제대로 구실을 할 수 있을 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현재 교사 자격증은 사범대 졸업자, 영어 관련 학과 교직 과목 이수자, 교육대학원 졸업자가 받을 수 있고, 임용시험을 통과해야 교단에 설 수 있다. 예비 교사 이아무개(32)씨는 “6달만 반짝 다녀 테솔 자격증을 따면 교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데, 누가 3~4년씩 교원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또 어렵게 사범대나 교육대학원을 다니겠냐”며 “억울하다”고 했다. 그는 “4년째 시험을 준비 중인데 솔직히 계속해야 하나, 테솔을 따야 하나 혼란스럽다”고 덧붙였다. 공씨도 “교사가 되려고 정부가 만든 정규 교육과정을 밟아 거의 10년 동안 안간힘을 써 왔는데, 교사 될 문을 밀어붙이기식으로 넓히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교사 자격증을 지닌 예비 교사들이 꽤 많은 만큼, 굳이 교사가 될 ‘다른 문’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범대 영어교육과 졸업자 등 해마다 대학에서 중등 영어교사 자격증을 쥐고 졸업하는 사람은 3400여명이나 된다. 그러나 교원 채용 인원은 한해 500~700명에 그친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한 간부도 “사범대 졸업생 등 영어교사로 검증된 인원이 매우 많다”고 말했다.
때문에 인수위가 이런 현실을 살피지 않은 채, 영어로만 말하는 영어수업을 2010년부터 일부 학년에서 전면화하겠다는 목표만 앞세워 ‘교직 개방’만을 밀어붙이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용시험 수험생인 김아무개(28)씨는 “인수위가 교사 자격을 개방하려는 배경에는 현직 교사나 예비 교사들이 영어를 잘 못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데,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며 “이미 교생 실습은 영어로 하고 있고,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상당수는 영어로 하는 수업에 거부감이 없을 만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김소연 최현준 기자 dandy@hani.co.kr
[한겨레 관련기사]
▶ 인수위, “안녕하세요” 아니죠~“굿모닝” 맞습니다
▶ 이경숙 “오렌지 아니라 오린지”
▶ 이 당선인, 간사회의 참석 10분발언 내내 “영어, 영어”
▶ SBS 라디오 생뚱맞은 ‘영어몰입 방송’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