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미국발 경제부실에 고통받는 세계, 신자유주의의 또다른 얼굴
미국은 1980년대 후반에도 방만한 투기적 대출에 따른 저축대부조합들의 줄도산으로 당시 국내총생산(GDP)의 약 3%에 상당하는 1500억~1900억달러를 날려버렸다. 그중 1250억 달러는 결국 국민세금으로 때웠다. 2000년 말 정보기술(IT) 붐(거품)이 무너진 뒤에는 불황 탈출 방책으로 저금리정책을 폈고 이것이 또다시 지금 사태에 이르는 부동산 투기를 불렀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국가적·국제적 규제장치들을 무의미하게 만든 월스트리트 강자들의 발명품인 첨단 금융투기공학기술들이 총동원된 ‘금융거품’의 붕괴라는 특징이 도드라진다. 1980년대의 일본 거품경제 때와는 달리 이번엔 돈을 빌려주는 금융회사들이 투기의 본산이었다. 금융회사가 신용도 낮은 주택구입자에게 고금리(대출 초기단계에는 저금리)로 돈을 빌려주고(서브프라임 론) 그 대출채권을 담보로 다시 증권(주택융자담보증권)을 발행해 판매한다. 그렇게 해서 은행은 바로 새로운 자금을 조달하는데, 이들 증권을 구매하는 쪽 역시 주로 금융회사들로 이들은 다시 이 증권을 담보로 또 새로운 증권(CDO, 채무담보증권)을 발행해서 돈을 모은 뒤 또다시 빌려주고, 그 빌려준 걸 토대로 또 증권을 발행하고 다시 증권의 증권을 발행하고…, 이런 무한증식이 실물경제와는 거의 무관하게 급속도로 이뤄진다. 이런 방식(레버리지)으로 평균 종잣돈의 10배 정도로 투기자금을 부풀린다. 거래는 국경을 넘어 전세계로 확대된다.
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2007년 4월 현재 세계의 하루 통화거래량은 3조2000억달러. 2004년에 비해(4년 만에) 65%나 늘었다. 2006년의 경우 연간 세계 (실물) 교역액이 환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에 지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98%의 자본거래가 투기 등의 단기자본거래다.(〈일본은 몰락한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그 결과 발생한 수익의 절반 이상을 자본과 금융공학 기술자들이 몰려 있는 미국 월스트리트가 독식한다.
거품경제의 독은 마치 생태순환을 통해 점점 더 고농도로 축적되는 중금속처럼 농축되다가 약한 고리 쪽이 무너지면 핵분열하듯이 일거에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폭발한다. 이번 사태로 발생한 손실액 역시 저축대부조합 사태 때처럼 현재 미국 지디피의 약 3%인 4000억 달러, 청산손실금액은 레버리지 효과 때문에 2조달러, 곧 지디피의 15%에 이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국제원유가 폭등도 이런 경제부실에 따른 달러약세로 입은 손실을 보전하려는 산유국들의 유가인상과 그 틈에 한몫 보려는 투기자본 때문이다. 이번에도 결국 약자들이 더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될 것이라는 공화당 필패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도 그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기축통화국의 이점과 국력을 배경으로 폭발력을 분산시키는 한편, 1997년 ‘아이엠에프 사태’ 때 자신들이 한국에 강요했던 긴축과 고금리 등의 쓴약을 정작 자신들은 마시지 않은 채 그로 인한 부작용을 전세계에 떠넘기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게 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글로벌화)의 또다른 얼굴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고해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도 찾을 수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69879.html